[의정부지원 판사 고발]오늘은 마작…내일은 술과 여자

  • 입력 1998년 2월 20일 19시 33분


“대법원의 진상조사 발표는 사건의 핵심을 외면한 것입니다.” 20일 대법원이 발표한 ‘의정부지원 판사 금품수수 사건의 진상과 향후 대책’을 전해들은 의정부지원의 A판사는 분노하고 있다. “변호사에게서 거액의 돈을 받은 문제의 판사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그들은 구속을 감수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그들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어요. 서울에서 더 먼 지원 판사들이 무통장입금을 통해 판사실운영비로 수십만원을 받은 것과 몇몇 판사가 친분있는 변호사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은 것이 사건의 전부인양 왜곡했습니다.” “관행적으로 받아온 수십만원의 운영비와 변호사에게 돈을 빌린 것도 문제라면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는 A판사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A판사는 문제의 판사들과 사건 브로커 고용으로 구속된 이순호(李順浩)변호사 등 이른바 ‘의정부 빅4’ 변호사의 ‘검은 관계’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문제의 판사들은 미아리 B룸살롱에 단골아가씨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변호사 등이 ‘오늘 판사님 가신다’고 연락하면 그 아가씨들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대기합니다. 내가 본 그들의 생활은 ‘하루는 마작, 하루는 술과 여자’의 연속이었어요. ‘저렇게 밀착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과연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판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받았을까. “아무 연고가 없는 은행지점에 통장을 하나씩 갖고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그 은행 근처에는 어김없이 문제의 변호사 사무실이 있어요. 변호사가 정기적으로 입금해 주는 거죠. 한 판사의 그런 통장에 1천수백만원이 입금돼 있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A판사는 “그러나 대법원의 발표에는 문제의 판사들이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며 “검찰과 대법원이 의정부지원 판사 전원의 통장계좌에 대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판사들의 비리를 밝히지 못했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A판사는 의정부지원이 ‘마피아 법원’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그는 “양식있는 판사들이 ‘이래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원장에게 건의한 적이 있다”며 지원장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은 A판사는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말했다. “양심적으로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의 판사들을 위해서라도 옥석을 확실히 가려야 합니다. 판사실운영비)명목으로 수십만원씩을 받은 판사는 저를 포함해서 전국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변호사에게 돈을 빌린 판사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의 판사들은 그 차원이 결코 아닙니다. 당장 엄청난 파문이 두려워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다면 법원의 진정한 권위를 되찾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일 뿐입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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