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3층 회의실.
판사들의 금품수수 비리사건으로 ‘쑥대밭’이 된 의정부지원 오세립(吳世立·52)지원장 취임식에 참석한 판사와 직원들은 착잡하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만든 것은 취임식. 국민의례를 포함, 겨우 3분만에 끝이 났다. 썰렁하기는 지원장실도 마찬가지. 예전 같으면 변호사 지역유지들이 보낸 축하용 화분이 수십개는 놓였을 터인데 화분 2개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세상의 손가락질과 소란이 휩쓸고 간 자리임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거듭나야 한다는 판사들의 굳은 결의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오지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오늘의 이 고통과 불명예는 분명 우리 법관들이 그릇된 관행과 생각을 철저하게 척결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온 국민의 눈이 의정부지원을 주시하고 있는 이때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대법원이 지법 부장판사를 지원장으로 보내던 관례를 깨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원장으로 발령한 것도 이례적인 일. 만신창이가 된 법원의 명예를 살리라는 ‘특명’일까.
취임식 10분후 지원장실. 이례적으로 제일 먼저 등기소장 10명이 들어갔다. 급행료 비리 등을 근절하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일해 달라는 지원장의 당부가 있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비리 사건이후 재판정에 들어서기가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정의의 마지막 보루’임을 자부하면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 묵묵히 애쓰는 훌륭한 판사가 많습니다. 이들의 양식을 지켜봐 주십시오.”
한 젊은 판사의 다짐이다. 불명예로 ‘얼룩진’ 법복이 다시 공정과 신뢰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의정부〓권이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