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증권 관련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기존 인력도 자르는 판에 새로 뽑는 데가 있을 리 없었다. 다른 사무직이라도 구하려고 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았다.
“재취업 알선 창구엘 갔더니 ‘눈높이를 낮춰 생산직으로 전직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10년 넘게 책상에만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기계를 만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식품업체 경리부 차장이었던 이모씨(37)도 재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작년 11월 실직한 그는 요즘 “내가 왜 경영학을 전공했는지 모르겠다”는 후회를 자꾸 한다. “뚜렷한 기술이 있으면 가게를 차리기라도 할텐데….”
넘쳐나는 실직자 중에서도 사무직들은 특히 갈 데가 없다.
기업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무직을 감원 1순위로 꼽고 대거 내몰고 있으나 이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기능직에 비해 크게 모자란 형편.
지난 1월중 노동부 산하 전국 취업알선 창구를 찾은 재취업 희망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화이트칼라의 재취업 성공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이 기간에 관리직은 3천83명이 취업을 신청했으나 새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고작 12명으로 0.39%에 불과하다. 전문직은 1.8%. 서비스 및 판매직 4.8%, 노무직 4.5%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사무직은 3.4%의 비교적 높은 수치를 보였으나 ‘속’은 그렇지 않다. 이중 대부분이 20대 여성들이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30,40대 남자 사무직의 취업률은 겨우 1.6%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무직 실직자들의 재취업센터 이용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재취업률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무직의 재취업 ‘수급 불균형’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작년 경영자총협회의 과잉인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력감축 대상으로 사무직을 꼽은 기업이 60.6%로 생산직(24.2%)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무직 실직자들의 전업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도 크게 미흡하다.
산업인력관리공단 등 정부기관에서는 직업훈련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온통 기능직을 위한 프로그램 일색이다. 최근 몇몇 민간기관에서 사무직을 위한 훈련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나 수적으로 충분한 인원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김상균(金尙均·사회복지)교수는 “사무직의 대량 실직은 기형적으로 비대했던 사무직 비중의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라며 “적극적인 생산직으로의 전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