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떠나간 동료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일요일도 잊었다. 몸이 ‘파김치’가 되면서도 불평 한마디 못한다. 떠난 이들에게 미안하고 일 덤터기를 쓴 ‘살아남은’ 봉급생활자들의 서글픔….
L산전 K과장(36)은 지난 한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지난 연말 같은 과 직원 7명 중 3명이 그만둔 이후 오후 7시였던 퇴근 시간이 밤 11시로 연장됐다. 격주 토요일 근무는 흐지부지됐고 수당 한푼 안나오는 일요 근무도 4주째 연속이다.
K과장은 “판매가 줄어 새로운 판매 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오히려 호황일 때보다 더 바쁘다”며 “87년 노사분규 이후로 가장 힘든 때 같다”고 말했다.
관계당국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실직한 사람들 중 60∼70%가 사무직 근로자. 이 때문에 각 기업체 업무직 ‘생존’사원들은 퇴직자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월말까지 1백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상반기중 1백50만명에 이르리라는 추산.
기업은행 S씨(30)도 지난달 조직개편으로 부 인원이 14명에서 9명으로 줄어들면서 업무가 늘어나 매일 오전 2,3시에 퇴근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부터 계속되고 있는 명퇴자 퇴직금 정산작업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이 은행 카드대금회수 전담반의 경우 퇴직한 1백여명의 사원을 용역 사원으로 재고용, 업무 공백을 메우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안병직(安秉直)교수는 “지금은 기업들이 적자 도산을 면하기 위해 사원들에게 과중한 노동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기업주는 사정이 나아지는 대로 노동 강도를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