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風공작 파문/수사 어떻게…]「정치적 해결」모색

  • 입력 1998년 3월 19일 20시 09분


18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이종찬안기부장은 ‘북풍조작사건’수사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안이 워낙 민감한데다 여야 정치인 상당수가 구속된 안기부 이대성(李大成)전해외조사실장이 작성, 유출한 ‘해외공작원 정보보고’문건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이부장은 문건의 신빙성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첩보수준으로 신뢰성이 떨어지는 자료”라며 평가절하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문서에 대해 언급한 뉘앙스와 궤를 같이한다.

이부장은 또 “지난해 대선때 여야3당 후보측과 북한측의 접촉사실을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이 북한측에 3백60만달러를 제공하고 북풍을 주문했다는 혐의를 인정할 만한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의원의 대북커넥션에 관한 문건내용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들린다. 다만 이부장은 “해외에 있는 참고인 1명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해 정의원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임을 시사했다.

이부장은 최모전의원이 대북접촉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이미 두차례에 걸쳐 최의원을 조사했지만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정치권 모두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고 말해 파문의 확산을 원치 않는다는 인상을 짙게 풍겼다.

그러면서도 이부장은 현재 진행중인 안기부조사와 관련, 몇가지 사족(蛇足)을 달았다. 이부장은 “조사가 현재 부장 직속 감찰실을 중심으로 진행중”이라며 “혐의사실이 드러날 경우 예외없이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부장의 발언을 뜯어보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을 준다. “신뢰성이 떨어진 첩보문서”를 철저히 조사해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예외없이 고발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부장의 진심은 어디에 있을까.

국민회의의 한 고위인사는 “이부장의 발언은 정치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발언으로 보면 된다”고 해석했다. 정치권과 연관된 내용에 대한 이부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만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기부의 자체조사는 이미 상당부분 진척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견검사 4명과 감찰실직원을 주축으로 대공수사실 직원 20명까지 지원받아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 정의원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혐의를 입증하는 수준까지 수사가 진척돼 있다는 후문이다. 정의원이 재미교포인 김모씨와 함께 지난해 11월 베이징(北京)에서 북한의 조평통 안병수(安炳洙)위원장대리와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김씨로부터 “정의원이 안위원장대리에게 3백60만달러를 줬다”는 말을 들은 제삼의 인사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기부는 최소한 정의원이 말한 대로 “‘개인적인 일’로 베이징을 방문, ‘우연히’ 안위원장대리를 만났다”는 말은 믿지 않는 분위기다.

문서의 유출경위와 목적 등에 대해서도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문서의 작성과정에서부터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 이병기(李丙琪)전2차장 등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말해 권전부장 등에 대한 조사가 깊숙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해 본다면 ‘북풍조작’ 및 정보보고 문건 내용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의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오히려 안기부가 수사를 철저히 진행시킨 뒤 그 결과를 놓고 정치권 인사에 대한 수사여부를 ‘정치적으로’결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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