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風공작 파문]「윤홍준 회견」은 권영해씨 작품

  • 입력 1998년 3월 20일 20시 08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가 최고권력기관의 전직 책임자인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이 퇴임 보름여만에 수인(囚人)의 신세로 추락할 전망이다. 권전부장은 ‘문서조작’ ‘협박’‘담판’ 등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신여권에 저항했지만 곧 구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핵심부는 당초 그의 구속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안기부의 ‘해외공작원 정보보고’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파문이 확산되고 문서의 조작 및 작성 유출과정에 권전부장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물증이 확보되면서 구속쪽으로 급속히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권전부장의 혐의는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윤홍준(尹泓俊)씨의 베이징(北京)기자회견 배후조종, 둘째는 오익제(吳益濟)씨 편지사건 관련, 세번째는 정보보고 문건의 조작 및 유출과정 공모.

검찰은 이중 우선적으로 기자회견건만으로 권전부장을 구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혐의가 드러날 경우 이 대목을 추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윤씨와 이대성(李大成)전안기부해외조사실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권전부장이 부인하기 어려운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권전부장의 지시로 윤씨가 안기부로부터 대선 직전과 직후 수십만달러의 공작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권전부장이 이전실장을 통해 대선직전 윤씨의 기자회견을 직접 지시했고 윤씨와 안기부의 통신내용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직후 입을 열지 않았던 이전실장도 최근 들어 권전부장의 개입사실을 진술하기 시작해 검찰수사가 급진전됐다.

안기부도 권전부장의 검찰소환에 앞서 제삼의 장소에서 권전부장을 조사, 혐의내용을 대체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권전부장의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권전부장은 윤씨와 함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의 공범(교사범)이 될 수밖에 없어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또 정치관여를 금지한 안기부법 위반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현재 검찰이 내사를 벌이고 있는 오씨 편지사건의 경우도 권전부장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수사대상에 오른 안기부 전직 간부들이 “오씨 편지에 대한 수사과정의 일환일 뿐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윤씨 기자회견 사건만큼 법적용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정보보고 문건의 작성 및 유출은 안기부 조사를 통해 권전부장의 공모사실이 이미 확인된 상태. 권전부장이 지난달 이전실장과 윤씨,‘흑금성’ 박채서(朴采緖)씨 등과 만나 여권에 불리한 내용의 문건을 조작했고 이 문서를 가지고 자신들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타협을 시도했다는 것이 여권의 정리된 시각이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건내용은 윤씨의 기자회견 내용에 꿰맞춘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대목도 국가기밀누설이나 안기부법 위반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있는 점은 검찰이 권전부장의 군납비리에 대해서도 은밀히 내사를 해왔다는 점.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권전부장이 안기부장 취임 후 국방부 군납사를 대부분 교체했다”며 “그러나 군납비리를 가지고 권력기관의 장을 구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군납비리를 혐의사실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권전부장이 혐의사실을 부인하거나 저항할 경우에 ‘히든 카드’로 활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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