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전부장은 이중 저녁식사 시간과 몇 번의 휴식시간을 뺀 약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신상규(申相圭)부장검사 등 검사 3명이 번갈아가며 작성한 조서가 무려 A4용지 30장에 달했다.
조사의 초반부. 권전부장은 자신이 윤홍준(尹泓俊)씨 기자회견를 지시했고 안기부 해외공작 자금 중 25만달러를 윤씨에게 지불했다고 순순히 털어놨다.
그러나 순조로운 것은 거기까지였다.
“윤씨 기자회견을 ‘아말렉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뭡니까.”(신부장검사)
“윤씨 기자회견은 각 당의 지나친 대북연계활동에 대한 경종이자 좌익세력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구약성서에 모세가 여호수아를 내세워 아말렉족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모세)가 부하들(여호수아)을 시켜 좌익세력(아말렉족)을 물리치려 한 상황과 유사하잖습니까.”(권전부장)
“DJ(당시 김대중대통령후보)를 비방하는 허위 기자회견이 좌익세력과의 전쟁입니까. 당신은 결국 구여권을 여호수아로 내세워 아말렉인 DJ와 싸운 거 아닙니까.”(신부장검사)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권전부장)
신부장검사와 권전부장은 몇시간동안 이른바 ‘아말렉논쟁’을 벌였다. 아말렉논쟁은 윤씨 기자회견 등 일련의 북풍조작사건의 궁극적 배경을 밝히는 것으로 둘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말렉족은 사막지역에서 거주하던 고대유목민족으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히브리족을 공격했다가 모세가 훗날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로 총애했던 여호수아에게 크게 패했다.
권전부장은 자신의 부하가 공격한 아말렉족은 좌익세력이었지 결코 특정후보가 아니었음을 강변했다.
그러나 신부장검사는 그것은 특정후보에 대한 일종의 낙선운동이었다는 논리로 그동안 조사한 정황과 증거를 제시했다.
잠 한 숨 자지 않은 채 계속되던 조사는 오전 4시에 일단 끝났다. 조서에 대한 확인과 몇군데의 수정작업이 잇따랐다.
이어 오전 4시40분. 조사실에 수사관 1명만 남은 걸 확인한 권전부장이 화장실로 들어갔고 5분 뒤 요란한 파괴음과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문 밖으로 퍼져 나왔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