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회견]북풍공작에 이용당한것 같다

  • 입력 1998년 3월 30일 19시 59분


북풍문건으로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던 국민회의 정대철(鄭大哲)부총재가 ‘칩거’ 2주일만인 30일 국민회의 당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정부총재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북풍문건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뒤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정부총재는 간담회를 통해 문건을 입수한 경위 및 청와대와 안기부에 전달한 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정부총재는 북풍파문의 주역으로 지목당하고 있는데 대해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안기부 문건을 전달받아 결국 북풍공작에 이용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은근히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풍사건은 과거 집권세력이 야당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북한을 이용한 정치공작”이라며 “4·11총선과 대선에까지 이용됐는데도 마치 국민회의가 공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공작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속된 이대성(李大成)전안기부 해외조사실장으로부터 문건을 받고도 일주일 가까이 방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봉투가 봉함도 되지 않아 탄원서나 진정서인 줄 알고 놔뒀다가 이전실장이 구속된 사실을 알고 그때서야 내용을 읽어봤다”고 해명했다.

정부총재는 또 “내가 문희상(文喜相)정무수석과 나종일(羅鍾一)안기부1차장에게 문건을 전달하면서 중요하다는 말까지 했는데 그들도 안봤다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비난의 초점이 되고 있는 문건내용의 유출경위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해 일부를 확인해줬으나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며 다소 구차하게 변명했다.

정부총재는 이날 간부회의 참석을 계기로 공식활동을 재개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입은 정치적 타격이 워낙 커 향후 운신폭을 제한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서울시장 출마는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며 말을 잘랐다.

그는 특히 문건의 내용을 사전에 발설하는 경솔한 행동으로 국익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과나 유감표명이 한마디도 없었다.

〈최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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