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단순히 강경식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정책 판단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외환 위기 실상을 대통령에게 적시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과 대통령으로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에 대한 재가를 받고도 제때에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들어 직무 유기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감사원의 지적에 의하면 97년10월말 이후 외환위기 대응이 늦어짐으로써 약 67억 6천만 달러에 이르는 보유 외환이 낭비되었는데 구제금융신청이 늦어진 이유에 정당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처리와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당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IMF에 대해 구제금융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를 고의로 회피한 것인지를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만약 두 사람이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으며 구제금융신청을 조금 늦춘다고 국가적 국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는 결국 무능함의 소치이기 때문에 그들이 항변하는 대로 정치적 행정적 책임으로 결론낼 문제다. 그러나 그들의 식견과 정보력에 비춰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인적 불명예, 기타 정당하지 못한 다른 이유 때문에 구제금융신청을 의식적으로 지체했다면 이런 경우에는 직무유기 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기소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위 관료들이 정책판단이라는 미명하에 비겁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사례를 많이 경험해왔다. 자신의 정책적 판단과 집행 행위로 인해 무수한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변명이 통용된다면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기 위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고위공직자들의 업무와 관련하여 이제 우리는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형사적 책임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검찰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김석연<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