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윤상호/『겨우 무기징역이라니…』

  • 입력 1998년 5월 1일 21시 48분


“아무 죄없는 우리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유괴범에게 1심부터 무기징역이라니요.”

지난해 박나리양을 유괴살해한 혐의로 전현주(全賢珠·29)씨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잠원동 나리양의 집.

나리양의 부모 박용택(朴龍澤·43)씨 내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앞에 앉아 있었다.

나리가 비명에 간 지 8개월.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재판을 지켜봤던 부부는 이 날 뜻밖의 판결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박씨 내외는 “임신한 몸으로 어린아이를 살해하고 법정에서까지 거짓말로 일관했던 전씨에게 내려진 이번 판결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어머니 한영희(韓英姬·43)씨는 지금이라도 ‘엄마’라고 부르며 품에 안길 것만 같은 나리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맥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잊어야지 다짐하면서도 나리친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한씨는 요즘도 나리가 나타나는 꿈을 꾼다.

“나리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엄마를 한참 바라보다가 안으려고 하면 저 멀리 사라집니다.”

목이 터져라 나리를 부르다가 꿈에서 깨면 감당하기 힘든 그리움에 내외가 눈물로 밤을 지샌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며칠 있으면 어린이날. 한씨는 “지난해 어린이 날 선물로 받은 인형을 꼭 껴안고 놀이기구를 타며 환하게 웃던 나리가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나리를 잃은 충격으로 신체 왼쪽부분이 마비돼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한씨는 “공정한 재판으로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수첩에서 꺼낸 나리 사진을 어루만지던 남편 박씨의 어깨가 흐느낌으로 들먹거렸다.

〈윤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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