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허창무/중산층저축이 사회안전판 역할

  • 입력 1998년 5월 13일 07시 02분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용어가 어떤 계기를 맞아 새롭게 정의돼야 하는 경우가 있다. 중산층이라는 용어도 그 중 하나다. 민주국가의 효시인 영국의 요먼(자영농)이나 프랑스의 중소상공계급에서 보는 것처럼 중산층이란 산업사회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자활능력(自活能力)을 가진 계층으로서 민주화를 촉진하는 계층을 일컫는다.

실업보험제도가 비교적 잘된 독일 봉급생활자들이 미래를 대비해 평소 7,8개월분의 급여를 저축하는 생활습관을 볼 때 이런 정의는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따라서 중산층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건전한 안정 희구세력으로서 사회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70∼80%가 중산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중산층이 IMF시대에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득이 늘어도 독일의 근로자와 같이 미래를 위한 예금을 하지 않고 자가용을 굴린다든가 주택의 크기를 늘리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IMF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치자 줄어드는 수입으로 생활이 어려워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 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 만약 독일 국민처럼 평소 7,8개월분의 급여를 금융기관에 예치했다면 실직을 하더라도 큰 어려움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거나 전셋집을 나와 사글셋집으로 옮기는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IMF시대를 맞아 우리 중산층이 배워야 할 교훈은 미래를 대비해 항상 적절한 준비를 할 것과 그러한 준비가 중산층으로 하여금 자활능력을 구비해 사회 안전판 구실을 하도록 하는 요건임을 깨닫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결국 국민 각자의 책임으로 살아가는 제도이고 국가는 단지 길잡이만 되어주는 제도라는 것을 명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1만달러시대’라고 소비를 구가하는 중산층의 오만과 허상을 버리고 중산층의 참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생활태도가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허창무<하나은행 서대문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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