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김정배 신임高大총장『21세기 열린大學 지향』

  • 입력 1998년 5월 17일 20시 10분


▼ 대담=김충식사회부장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봄비에 젖어 있다. 16일 고즈넉하게 젖은 고려대 캠퍼스의 신록을 내다보며 인촌기념관에서 14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정배(金貞培·58·한국사)교수와 마주앉았다.

신임 김총장은 고려대를 21세기에 대비한 국제화 정보화 대학으로 이끌겠다는 청사진을 펼쳤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대학과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소신을 밝혔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총장 후보로서 여러가지 비전이랄까, 공약을 말씀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려대의 장점인 화합과 단결, 설립자이신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정신을 받들어 일해 나갈 생각입니다. 총장은 또 대학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두루 수렴하면서 법인 정관을 충실히 이행해 재단과 화합하는 정책을 일궈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사업으로는 먼저 유기적인 행정전산망의 구축이 급합니다. 학내외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능률적인 정보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

학교 행정의 분권화를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이미 거대규모로 성장한 대학을 중앙집권식으로 운영해서는 효율성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실무는 단과대별로 맡아 처리하고 대학본부는 과정을 감독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가겠습니다.

2005년 고려대 개교 1백주년 기념사업도 충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고려대 역사는 민족 근대화 현대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최근 1백주년 행사를 가진 일본의 와세다대, 중국의 베이징대 행사도 참고하겠습니다. 졸업식과 운동경기도 그 안에서 치를 수 있는 기념비적 건축물 건립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역시 많은 구상은 재원문제를 수반하게 되겠습니다. 더욱이 IMF시대인데 재원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 것인지.

“우선 국제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고려대의 경영진단을 맡길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15∼20%의 예산을 절감하겠습니다. 이젠 대학도 다른 대학이 하면 나도 한다는 식의 방만한 백화점식 운영을 지양해야 합니다.

과거처럼 기업에만 매달린다고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기업과도 호혜적인 입장에서 산학협동을 이루어 나갈 생각입니다. 또 고려대가 발전해야 나라와 민족이 발전한다고 믿어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믿습니다. 고려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국내외 인사들을 통해 모금운동을 펼치겠습니다.”

―총장후보로서 21세기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대학 운영을 강조해 오셨는데요.

“국제화를 지향하는 ‘열린 대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학생은 물론 외국 학생들도 과감히 받아들여 국내외에 인재를 공급함으로써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임총장이 추진해온 ‘바른 교육 큰 사람 만들기’사업 등은 어떻게 이어나갈 계획입니까.

“잘한 것은 계속 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총장마다 다양한 생각과 철학이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저는 국제화 정보화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정보화는 곧 과학화 합리화를 의미합니다. 19세기 외국인들이 당시 조선사회를 보고 두 가지를 지적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첫째는 과학성 부족, 둘째는 종교가 일상 생활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과학성부족은 곧 합리적 생활자세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교내 분권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교수채용 등 단과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대학별 학과별로 과감한 자율권을 주고 대학본부는 그 과정을 철저히 감독하면 됩니다. 대신 행정정책의 투명화 실명제가 분권화의 밑바탕이고 권한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져야 합니다.”

―교수채용시 모교출신을 우선채용하는 전통이 한국 대학의 병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인브리딩(Inbreeding)이라 해서 학문의 동종교배(同種交配)를 피하는 게 원칙인데요.

“고려대는 타교출신과 모교출신 교수들이 가장 합리적으로 배합돼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타교출신 인재를 과감히 채용해야 합니다. 이는 밑바탕에 깔린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하버드대도 모교출신교수가 4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밝히신 국제화 정보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해외대학과의 학술 교류폭을 확대하겠습니다.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재학중 해외에 나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화에는 북한도 포함됩니다. 임기중 정부의 정책범위 안에서 북한과의 학술교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학생들이 취업에만 매달려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경영마인드를 강조하다보니 대학을 마치 돈버는 곳처럼 여기는 이상한 풍조가 생기고 있습니다. 대학의 기본은 아카데미즘입니다. 외부연구지원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너무 염두에 둬 정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교수들의 학문업적평가를 통해 신중하게 연구 결과를 유도하겠습니다.”

―조치원 서창캠퍼스와 서울 안암캠퍼스간의 갭이랄까 하는 것도 과제인데요.

“서창캠퍼스는 수도권 인구분산정책에 따라 건립되어 안암캠퍼스보다 출발이 늦었습니다. 이미 오랜 역사가 쌓인 안암캠퍼스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안암과 서창에 모두 영어영문학과가 있는데 서창캠퍼스는 회화중심의 실무능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특화시키는 방안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몇년 동안 고려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졸업생 연속 1위에 꼽혔습니다. 어떤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보는지요.

“지적 능력이 상위권이면서 선후배간의 친화력과 끈끈함이 몸에 배어 기업 내에서도 조화로운 생활이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진취성과 단결성을 두루 갖춘 점과 남다른 책임감도 좋은 인상을 준다고 봅니다.”

―교수협의회와 재단의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조율할 복안은 어떤 것인지요.

“화합은 고려대의 장점입니다. 교수협의회는 가능한 한 학교행정 간섭을 자제하고 재단측도 교수들을 존중하면서 공개행정을 펼치면 고려대 발전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번 총장선출 과정에서도 고려대의 자랑스러운 화합 전통과 저력이 표출된 것으로 봅니다.”

―평소 후배나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좌우명은 어떤 것입니까.

“젊은이에겐 모험심이 있어야 하고 고난을 뚫고 나가는 개척정신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몸도 마음도 쇠퇴합니다. 끊임없이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거품이 꺼지면서 IMF체제 아래 우리 사회가 고통속에서 크게 ‘역사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어떻게 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요.

“금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준 국민의 정성에 감동받았습니다. 우리 국민은 정이 많습니다. 각 분야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한다면 정많은 우리 국민은 이를 잘 따라갈 것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사립대의 경우 국민의 협조를 얻어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지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기여입학제는 대학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해외로 돈을 내보내는 것은 막지 않으면서 국내 대학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리〓이원홍·윤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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