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윤상호/『마음에 상처는 안줘야죠』

  • 입력 1998년 5월 28일 19시 05분


“IMF 여파로 중식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은 늘고 있지만 모두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울 중구 H공고 중식지원 담당교사 석모씨(49)는 요즘 점심시간만 되면 답답한 심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본다.

4월부터 고교까지 중식지원이 확대되면서 이 학교의 경우 전교생 4천여명 중 2백15명이 지원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급식시설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도시락을 주문해 상담실에서 학생들이 받아가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원신청을 해 놓고도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의 눈에 띌까봐 도시락을 받아가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식당에서 빵이나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바라보는 석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얼마전 한 학생이 상담실로 찾아와 도시락 지원을 부탁하더군요. 부모가 실직해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자존심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석씨는 최근 들어 불황이 깊어지면서 상담실을 몰래 방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학생들 대부분이 지원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신경을 쏟고 있다.

경기 양평 H공고의 경우 학생들에게 ‘극비’로 한달치 식권을 준 뒤 학생식당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도록 한다.

서울 마포 J중학교는 교직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학생들이 가져가 식사한 후 빈그릇은 반납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과 김남주씨는 “최근 들어 일선 중식지원 담당교사들로부터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방안을 묻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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