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서울중앙병원 영안실.
아내 이모씨(45·여·회사원·서울 송파구 송파1동)의 영정 앞에서 남편 권모씨(49)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권씨 부부는 86년 3월 경북 구미시에서 상경한 뒤 사글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내 집마련의 꿈’을 키워갔다.
마침내 96년 이들 부부는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의 주공 2차아파트 28평형을 8천6백만원에 분양받아 개인택시 기사인 권씨와 B제지 경리직원인 이씨가 받은 월급을 알뜰살뜰 모아 2년간 중도금과 은행이자를 차례차례 납부, 10일 입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들어 IMF 여파로 은행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아내의 월급마저 최근 회사의 부도로 못받게 됐습니다.”
깊어가는 생활고로 권씨 부부의 말다툼이 잦아졌다.
결국 8일 오전 9시15분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권씨는 안방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이씨를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권씨가 이날 아침식사를 마친 뒤 “이사를 해야 하고 아들 책상도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면서 화를 내는 이씨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이사하기로 한 날에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게 됐습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고생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마당에 새 집에 들어간들 무엇이 기쁘겠습니까.”
이씨의 동생(34·여)도 “명랑하고 낙천적인 언니가 올들어 생활이 너무 어렵다며 우울해 하더니 이렇게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안주인을 잃은 권씨 부부의 반지하 전세방에는 주인 잃은 이삿짐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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