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소」 北으로]실향민들 『소들이 부럽다』

  • 입력 1998년 6월 15일 19시 53분


15일 밤 11시 충남 서산의 현대건설 농장. 정주영(鄭周永)현대 명예회장과 함께 이튿날 방북길에 오르는 소 5백마리를 태운 트럭들이 힘찬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현대 사기(社旗)와 적십자사 깃발을 매단 50여대의 차량은 어둠을 타고 임진각을 향해 밤새 달렸다.통일의 염원을 담은 ‘짧고도 긴’ 여정이었다.

이에 앞서 소들은 그동안 키워준 서산농장 직원과 주민들의 융숭한 환송을 받았다. 이날 오후 3시 열린 방북 소 환송식에서는 서산농고 학생들의 흥겨운 농악놀이와 잔치가 벌어졌다. 소들의 무운과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기원하는 제(祭)도 펼쳐졌다.

서산농장 강영락(姜永洛·49)소장이 소들의 목에 화환을 걸어줬다.

강소장은 “자식처럼 정성껏 키운 소들인데, 꼭 딸 시집보내는 마음”이라면서 “북한에 가서도 건강하게 농사일을 잘 해주라”고 당부하듯 말했다.

잔치에 참석한 주민중엔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실향민 이재원(李載元·77)씨도 있었다.

소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이씨는 못내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이 소들이 참 부럽네요. 얘들이 부디 50년간 막힌 고향 방문길을 터줘야 할텐데….”

농장 직원들은 소들이 10시간 이상 긴 여행에 시달릴 것에 대비, 사료를 듬뿍 먹이고 행여 다치지 않도록 차량 바닥에는 톱밥과 왕겨를 깔았다. 난생 처음 차를 타보는 소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릴까봐 수의사와 축사관리자 등도 뒤따라 ‘호위’했다.

서산을 출발한 차량은 시속60㎞의 속도로 천안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서울∼올림픽대로∼신행주대교∼자유로를 거쳐 16일 오전 6시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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