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낮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대구은행 삼성동지점. 창구마다 줄을 서서 통장 개설과 입출금을 되풀이한 1백50여명의 회사원들로 좁은 사무실이 북적대고 있었다.
1백원짜리 동전과 함께 예금통장을 개설한 이들은 곧이어 예금청구서에 3원, 6원, 1원 등의 금액을 기입하면서 다시 창구에 출금을 요구했다.
이들은 ㈜청구와 청구주택 등 최근 부도를 맞은 청구그룹 계열사 직원들. 오전9시반경 은행이 문을 연 뒤 줄을 서다시피해 ‘필리버스터’를 거듭했다. 은행을 찾은 다른 고객들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은행측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정상적인 ‘고객’인데다 입출금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해 가을 회사가 직원들의 명의를 빌려 대출을 받았다가 부도와 함께 5,6월 이자를 연체시키면서 대구은행측이 15일 직원 각자에게 이자정리를 요청한 것이 발단.
개인마다 대출금액은 5천만∼8천만원에 달했고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이자부담은 한달에 60만∼80만원에 이르고 있다.
㈜청구 직원 권오봉(權五奉·45·양천구 신정동)씨는 “회사가 직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적으로 직원 4백36명의 명의를 빌려 3백57억원가량을 대출, 애꿎은 직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은행측에 항의하는 뜻으로 이같은 방법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