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잠수정 사건을 접한 정부 당국자들은 일단 “모처럼 남북관계가 풀려 가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며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23일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돌아오고 유엔사와 북한간의 장성급 회담이 7년만에 재개되며 영국 이코노미스트 그룹 주최의 대한(對韓)투자세미나 행사가 열리는 판문점의 ‘3대 빅 이벤트’를 하루 앞두고 이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일부 당국자들은 96년9월에 터진 강릉 잠수함침투사건으로 김영삼(金泳三)정부 막판의 남북관계가 크게 경색됐던 악몽을 떠올리며 이번 일이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지레 걱정하기도 했다.
잠수정이 그물에 걸리게 된 경위는 앞으로 조사해봐야 하지만 일단 북한 잠수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 것은 사실인 만큼 남북관계에 상당한 긴장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사건이 북한 잠수정의 불가피한 조난이나 항해실수 등의 이유로 발생했다면 파문이 일과성으로 그칠 수도 있으나 의도적인 도발이라면 후유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망이다.
이 때문에 북측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도 분분했다. 통일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아직 남북관계 개선에 응할 준비가 안돼 긴장을 조성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부가 이날 8·15 통일대축전 준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회담을 열자는 내용의 대북 서한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이 수령을 거부한 것과 같은 맥락의 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남북관계가 이번 일로 큰 타격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눈치다. 북한의 도발을 불용하겠다는 게 대북정책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만큼 도발이라면 강력히 대응하겠지만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은 불필요하다는 조심스러운 주장도 있다. 정부가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면에는 23일 돌아오는 정명예회장이 가져올지도 모를 북한측 메시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정부는 정명예회장이 이번 방북을 통해 김정일(金正日)을 만났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럴 경우 비록 정명예회장이 공식적인 메신저는 아니더라도 이산가족교류문제나 남북정상회담개최가능성 등 남북관계의 주요현안에 대한 북한측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나마 전달받을 수도 있다.
특히 정명예회장이 조만간 청와대를 예방,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단독면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대목도 정부가 이번 방북에 모종의 기대를 걸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