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만난 한 친구의 고백이다.
평소 “여자가 살림이나 하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얼마전 회사에 감원태풍이 시작되자 맞벌이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털어놓았다.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긴 했지만 그의 아내와 같은 입장이 되고 보니 왠지 섭섭했다. 언제는 아내를 가정을 돌보지 않는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더니 살기가 힘들어지니까 함께 생계를 책임지자니….
이제나마 아내의 존재를 인정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했을까. 그보다는 ‘왜 이제서야’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사실 우리 남편들이,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일하는 여성에게 관대했더라면 지금처럼 고실업의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만 해도 맞벌이 비율이 57%(91년)나 되고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은 70%를 훨씬 넘는다. 부부 중 하나가 해고돼도 나머지 하나가 벌어먹이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맞벌이 비율은 25.4%(96년)에 불과하고 그나마 파트타임 같은 불완전 취업이 많다. 네가구중 적어도 세가구는 가장이 직장을 잃으면 온 가족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선지 유럽에선 11∼12%의 높은 실업률에도 끄떡없지만 우리는 실업률 7%에 이미 가정과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작년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이 여성계에 파문을 일으켰을 때 한 평론가는 “호황때는 커리어우먼이 부각되지만 불황에는 가부장제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친구의 때늦은 후회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생활고 때문에 아내를 일자리로 내모는 가부장제의 또다른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이영이〈경제부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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