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선향/두번 생각한후 말하기

  • 입력 1998년 6월 28일 20시 35분


서양 속담에 ‘말하기 전에 두번 생각하라(Think twice before you speak)’는 말이 있다.

한번 생각하고 말하기에도 바쁜 세상에 두번씩이나 생각하라니 당치도 않은 말. 누구 숨 넘어가는 걸 볼 일이 있나 라는 반응이 우리 의식속에 일어날 수 있음을 예감한다.

한국인의 급한 성품은 ‘빨리 빨리’라는 말로 요약되어 무엇에든 ‘화끈’하고 열정적이라는 면에서 매력인 동시에 실수하기 쉬운 약점이 되기도 한다.

거리 곳곳에서 공사현장들이 행인이나 그 지역 주민들에게 끼치는 불편은 성급함 때문에 겪는 피해다.

▼언어폭력 순화하는 길▼

수도관을 묻고 메우고 다시 파서 또 무슨 관을 묻는다며 뜯고 파내고 메우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그러는 동안 행인이나 차량은 먼 길로 돌아다니고 마침내 공사가 끝난 곳을 통과할 때는 서둘러 구멍을 덮느라 울퉁불퉁해진 지면을 곤혹스럽게 지나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요즘 우리는 눈을 뜨고 아침을 열면 날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의 폭력이 드라마 이상으로 현실인 세상에 살고 있다.

영상매체나 현실을 통해 보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웬만큼 난폭한 사건은 이젠 충격도 자극도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성급함과 폭력을 침잠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길로 언어의 순화를 모색해 본다. 생각해 보면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아기가 처음 말을 배울 때 부모와 가족에게 주는 기쁨처럼 말로 이루어지는 표현은 인간에게 얼마나 신기하고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언어도 폭력의 시대에 맞추어 난폭해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월드컵 축구의 절정에서 낭패를 중계하는 동안은 흥분의 와중에서 격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보도식으로 알릴 때까지 ‘분통’ ‘분노’ ‘전격경질’ 등의 과한 표현으로 감정을 들끓게 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승부의 세계가 아무리 냉혹한 것이라 해도 우리가 관람하는 것은 스포츠경기라는 인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극성스러운 팬들이 난동을 부리는 흉한 장면도 정신적 훈련이 부족해 광기로 치닫는 결과임을 인식해야 하듯이 언어의 폭력을 벗어나 감정을 절제하는 언어의 사용으로 자연스러운 의식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아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에겐 불친절하다. 어린이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아이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고 무심코 “없다”하고 찰칵 끊는다. 어린이도 인격적인 대우에 감동하고 고마워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IMF가 시작되면서부터 판매가 이뤄지는 곳에서는 점원들이 전보다 상냥해지고 친절해졌다. 물건을 고르다가 사지 못하는 경우에도 전과는 달리 퉁명스럽던 말 대신에 다시 찾아달라는 인사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는데 반해 역경을 보완하는 좋은 본보기라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손익이 계산되는 곳에서의 변화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변화가 시작일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중국인들은 말을 할 때 시적인 비유를 즐긴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원로 한분이 중국의 민주화를 설명하면서 잔잔한 호수에 비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지한 듯한 호수 표면에 잎새 하나를 띄우면 그 잎새는 어디론가 움직인다. 중국인도 그렇게 변화하고 움직인다고 했다. ‘느림’의 미학이고 언어의 미학이기도 하다.

완만하고 여유있는 중국인과 치밀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 사이에서 우리의 빠르고 열정적인 면을 장점으로 살리기 위해선 아주 쉬운 일부터 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운문교육 효과적 방법▼

언어의 순화는 개인과 가정에서 학교 사회 국가로 확장되는 길과 거꾸로 국가에서 개인으로 축소되는 길이 병행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음을 믿는다. 이를 실행시키는 지도력은 언론의 몫이기도 하다.

언어를 순화하는 방안으로 산문교육보다 운문교육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에 접근한다는 것은 정서적 활동 못지않게 지적인 훈련이며 종합적 정신능력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하고 말하기보다 두번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도 한다. 언어의 미학이 속도와 폭력의 시대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삭이는 청정제가 되었으면 한다.

김선향<경남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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