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부형권/IMF가 되살린 법조항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법정에 한번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과자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얼마전 채권자의 고소로 민사소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2백만원을 선고받은 ‘IMF형 채무자’ 이모씨(57·회사원).

이씨는 항소심 법정에서 자신의 부주의와 무신경을 반성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씨의 혐의는 법적으로 채권채무 관계가 확정된 채무자가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재산을 법원에 신고하는 명시(明示)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것.

재판부는 이씨의 벌금을 1백만원으로 낮춰주었지만 이씨는 결국 민사소송법을 어긴 형사전과자가 되고 말았다.

같은 처지의 채무자 정모씨(44·여)도 최근 재산관계 명시기일 통지서를 받고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4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교통체증 때문에 조금 늦었지만 통보된 날짜에 법정에 나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록상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재산목록을 제출하지 않거나 재산목록이 진실하다고 선서하지 않거나 재산목록을 허위로 작성해 제출하면 3년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90년 신설된 이 규정은 그동안 거의 유명무실했는데 최근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하는 수단으로 이 규정을 이용하는 채권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지법 민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IMF시대가 잊혀졌던 법조항을 살려낸 셈”이라며 “채무자들은 명시기일에 반드시 본인이 직접 출석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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