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총장〓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몇 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이는 저널리스틱한 표현이고 학문적으로는 공화정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양교수〓공화국에 번호를 붙이는 것은 5공화국부터 시작됐습니다. 서문에 특별히 5공화국이라고 못박아 뒀는데 당시 집권자가 과거 유신헌법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총장〓정치지도자의 헌법의식이 큰 문제입니다. 건국 직후에는 헌법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헌법을 그저 서양에서 이식된 제도의 하나로 폄훼하는 경향이 생겨났죠. 이것이 우리 헌법이 많은 곡절을 겪게 되는 배경이 됐다고 봅니다. 그런 한편으로 헌법재판소가 생기면서 국민의 헌법의식이 비교적 높아졌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양교수〓헌재의 등장이 국민의 헌법의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이제 헌법도 구속력을 가진 법이라는 의식을 싹트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총리서리문제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큰 아쉬움을 남깁니다.
김총장〓이번에 헌재가 결정을 내려줬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미국 헌정사에도 극도로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판단을 내리는 것을 자제하는 사법자제원칙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양교수〓헌재는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온 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그런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민법상 동성동본금혼조항과 영화검열문제 등은 적극적으로 해결을 모색한 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역할을 한정시키고 말았습니다. 얘기를 머지않아 뜨거운 쟁점으로 부활할 권력구조문제로 바꿔보지요.
김총장〓우리 권력구조는 특정권력자의 고려하에서 마련된 성격이 짙습니다. 이승만(李承晩)시절에는 대통령제하에서 부통령에다 총리까지 뒀고 박정희(朴正熙)시대에는 2인자를 두기 싫어 부통령을 없애고 총리를 뒀습니다. 최고권력자의 편의에 의해 권력구조가 논의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양교수〓잘못된 헌법전통은 제헌국회부터 시작됐죠.유진오(兪鎭午)박사가 만든 초안은 내각제였으나 이승만대통령이 반대하니까 하루아침에 대통령제로 바꾸다보니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무원칙하게 뒤섞여 버린거죠.
김총장〓현 헌법은 인권신장과 삼권분립 등에 있어서 많은 점이 개선됐으나 단임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고권력자는 퇴임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발생했고 레임덕현상도 일찍 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4년 중임제의 대통령제를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金泳三)정부의 실정을 돌이켜보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정권교체가 가능한 내각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교수〓내각제의 기본은 권력의 공유와 분점입니다. 그러나 중앙집권제와 권력집중에 익숙해져 있는 정치문화에서 하루아침에 권력구조를 바꿀 경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의 대통령제는 국회 다수당과 행정부가 대립할 경우 해결방책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많습니다. 총선과 대통령선거의 시점이 다를 경우 총선은 항상 대통령의 실적에 대한 평가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어 여소야대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들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정치구조의 민주화, 즉 후보자공천권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총장〓지금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3김’이 뽑아준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김이 뽑고 여기에 국민이 찬반투표를 한 셈이죠. 앞으로 정당의 민주화에 상당한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양교수〓정당이 스스로 후보자공천의 민주화를 못이룰 경우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김총장〓요즘 국회의장 선출문제로 국회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회의장을 청와대에서 내정했다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는데 이것을 삼권분립으로 볼 수 없죠.
양교수〓‘식물국회’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인데 이 역시 헌법체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당과 집권자의 의사를 관철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입니다.
김총장〓앞으로 국민의 기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북한이 붕괴될 경우 북한주민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양교수〓통일헌법의 핵심은 권력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헌법은 통일이전의 헌법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여러 부문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헌법관점에서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총리서리문제 국회원구성지연 등은 국민의 헌법의식을 퇴보시키는 일입니다.
〈정리〓이철희·공종식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