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제1집’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음반 자체가 아니라 일반인과 평론가들의 반응이다. 어쩌면 그렇게들 아무것도 모르는 얘기로만 점철하는 지 모르겠다.
비난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음악평론가들조차 ‘음악 외적인’ 평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책임 방기’다.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어떤 말도 하지 못하면서 그냥 “좋다” “나쁘다”는 말로 끝내버리면 병속에 갇혀 있다 날아가는 비둘기도 안 믿는다.
서태지는 이번 솔로 앨범에서 기존의 수많은 음악들을 가져다 철저히 해부한 후 ‘서태지식’으로 재조립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것은 테크노 음악작업 방식중의 하나인데 그는 수많은 곡들을 재조립하면서 각각의 곡에만 신경 쓴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로보트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곡만 따로 듣는다면 재미가 매우 적겠지만 앨범 전체를 걸어놓고 듣는다면 의외로 쫄깃하다. 심지어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인더스트리얼과 테크노 하드코어 등의 장르를 록스타일로 ‘샘플링’하는 기발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은 9곡이 담긴 28분 짜리다. 절대로 ‘6곡’이 아니다. 간혹 30초 안팎의 연주곡 3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음반은 ‘감성으로 만든 음악’이라기 보다는 ‘이성으로 조립한 로보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로보트에서 부품 하나가 빠져버리면 제대로 동작을 하겠는가. 어쩌면 이 음반은 ‘좀 많이 긴 한곡짜리’작품으로 봐야할지 모른다.
게다가 그는 28분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증 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섭게 많은 음악을 집어넣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모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Take’시리즈 중 하나를 골라 귀를 쫑긋 세우고 부분 부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들어보라. 곡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5초이상 똑같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예전부터 음악 작업을 할때 엄청나게 ‘쑤셔넣는’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해졌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신보가 발매되면 ‘음악인 누구, 새로운 장르 시도’라고 하는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본다. 서태지의 이번 음반은 그 자체로 압권이고 필자 개인으로서는 올해의 5대 명반이나 10대 명반에 꼽을 만큼 훌륭하다.
중독성도 제법 강해서 여기에 한번 제대로 빠지면 다른 음악이 귀에 안 들어올 정도다. 솔직히 국내든 외국이든 이 정도 음반은 나오기 힘들다.
김진성(「서태지와…」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