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용 「노근리」대책위장 『한국전,미군 주민학살 악몽』

  • 입력 1998년 7월 26일 19시 55분


“피란길에 영문도 모른 채 미군에게 억울하게 학살당한 영혼들이 지금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주민들이 50년 영동읍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 학살사건 이후 각지에 흩어진 생존자와 유족들을 초청해 사건발생 48년만인 28일 첫 합동위령제를 연다.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장 정은용(鄭殷溶·76)씨는 “48년전의 끔찍한 비극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실 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50년 7월26일부터 29일까지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 등 6백여명을 “피란시켜 주겠다”며 노근리 경부선 철로쪽으로 이동시킨 뒤 무차별 기총사격을 가했다는 것.

폭격 이후에도 미군은 생존자들을 인근 터널로 몰아넣은 뒤 4일간에 걸쳐 기관총 사격을 가해 수백명의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을 살해했다.

정씨도 이 사고로 당시 여섯살된 아들과 세살된 딸을 잃었다.

94년 생존자와 유족들이 발족시킨 대책위가 현재까지 파악한 사망자만도 1백32명이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각종 자료에 따르면 희생자가 4백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주민으로 위장한 인민군에게서 공격을 받았던 미군의 오해였다는 미국측의 입장과 주민인 사실을 알면서도 상부명령에 따른 미군의 범행이라는 주민의 주장이 맞서있다.

정씨는 지난 30여년간 미군의 만행을 뒷받침하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한국 전사(戰史)자료 및 미군의 작전일지 등 수백가지의 국내외 관련 문서들을 입수해 수차례에 걸쳐 미국 정부와 미국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구체적인 증거 자료가 없으며 시효 소멸로 재고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4월 지난 2년간 매달려 온 희생자에 대한 손해배상 재심 신청마저 법무부에서 기각돼 정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침통한 상태다. 정씨는 “내달 손해 배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헌법소원과 국회청원을 내고 유엔 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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