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 폭우]「안전불감증」이 낳은 「한국적 人災」

  • 입력 1998년 8월 2일 19시 44분


폭우에 휩쓸린 '피아골'
폭우에 휩쓸린 '피아골'
1백여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이번 재난은 자연재해에 피서객과 당국의 ‘안전불감증’이라는 인재(人災)가 어우러진 ‘한국적 비극’의 전형이었다.

우선 폭우에 대한 기상청의 집중호우 예보가 늦어 대피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관리당국이 설치한 비상경보장치는 제때에 작동하지 못했으며 현장 관리요원들은 상부지시만 기다리며 대피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또 일부 피서객들은 입산은 물론 취사 야영이 금지된 지역에 몰래 들어가 텐트를 쳤으며 대피경고를 하는 관리요원들의 단속을 무시하다 변을 당했다. 지리산 뱀사골의 경우 계곡휴식년제로 취사 야영은 물론 흐르는 물에 발조차 담글 수 없는 곳이었다.

▼ 피서객의 안전 불감증 ▼

장마철에는 계곡이나 하천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해야 하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피서객들이 많았다. 실종자들의 대부분이 하천변에서 급류에 휩쓸렸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박영덕계장은 “피서객들을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이 관리요원들의 눈을 피해 잠시 숨어있다가 다시 나오곤했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의 한 직원은 “평소 경보가 울려도 여행객들이 잘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때늦은 기상청 예보 ▼

중국 양쯔강 하류지역에 많은 양의 비를 내린 저기압전선이 한반도 남해쪽으로 이동한 것은 지난달 31일 오전. 이 저기압전선이 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지리산 일대 등에 대한 호우가 예상되는 등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사고지역을 포함한 전남내륙 전북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것은 이날 오후 10시반경. 기상청은 총 70∼8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이날 오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이미 1백28㎜의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 재난관리체계의 허점 ▼

재해대책관리본부는 6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 ‘여름철 재해대책기간’으로 정해놓고 이 기간에 기상청으로부터 하루 5차례의 기상정보를 받고 있다. 재해대책본부가 기상청의 주의보가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관리요원들은 현장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채 상부의 지시만을 기다리다 구조시기를 놓쳤다.

▼ 경보시스템의 문제점 ▼

행정자치부가 국립공원에 설치한 ‘우량 자동 경보장치’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비가 시간당 15㎜ 이상 내릴 경우 사이렌과 함께 경보가 울리도록 설계된 이 장치는 덕유산 월악산 속리산계곡 등에 설치돼 있다. 지리산에도 대원사 중산리 뱀사골 등에 설치돼 있다.

산청군은 “31일 오후 9시58분 경계 경보가 울리고 11시21분 본 방송이 나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피해자들은 경보를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원홍·박윤철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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