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회사 사장 김정환씨, 하룻밤폭우에 공장잃고 한숨

  • 입력 1998년 8월 7일 19시 25분


수마(水魔)가 스친 자리에 기막힌 사연들이 ‘생채기’처럼 남았다.

서울 성북구 석관1동에서 유아용 신발제조업체 가나실업을 운영해온 김정환(金正煥·46)사장. 그는 7일 고무장화와 반바지 차림으로 직원 20여명과 함께 지하공장의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사장은 가업인 신발 공장을 이어받아 몇년새 파도처럼 밀려오는 부도위기를 넘겨왔다. 지난해 매출도 8억여원. 하지만 정작 하룻밤 폭우 물길에 공장을 처박고 말아 말을 잃었다.

이번 폭우로 완제품 2천켤레와 불과 사흘전 겨울용 신발을 만들기 위해 들여온 원자재를 몽땅 버렸다. 폴리우레탄 5천여m, 밍크털 1천m, 가죽 3천평이 물에 흠뻑 젖고 미싱 재단기같은 기계도 못쓰게 돼 피해액이 1억원에 이른다는 것.

“참 어려운 고비를 잘도 견뎌왔구나 하고 생각해왔는데 그만 물난리로 10년간 쌓아온 사업체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자니 너무 기가 막힙니다.”

89년10월 이곳에 옮겨온 가나실업은 92년 납품해오던 논노가 부도 나 휘청했다. 그래도 유아제품 시장이 활황을 띠면서 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7월 ‘유베라’부도로 납품액 1억원을 날렸고 올해 6월에는 다시 ‘베비라’가 부도나면서 4천5백만원을 날려야 했다. 하지만 김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신용도 하나로 1억5천만원의 은행대출을 받으며 불황을 헤쳐왔다.

6일 오전 5시반. 전날 호우예보를 듣고 불안한 마음에 잠이 들었던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빗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진 것.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5분거리에 있는 지하공장으로 뛰어갔다.

원자재를 위로 옮겨놓기 시작하자 옆벽을 타고 물줄기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창문으로 물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결국 거센 물줄기를 헤치고 몸만 빠져나왔다.

“어떻게 합니까. 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뛰어야지요. 지금까지도 수없는 파도를 헤쳐 나왔으니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겠지요. 직원들과 손잡고 다시 뛰겠습니다.”

김사장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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