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쏟아진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긴 김형곤(金亨坤·17·서울 북공고 2년)군. 1천여명의 서울 노원마을 주민들과 함께 수락초등학교에 몸을 피하고 있는 그는 물난리속에서도 자신의 ‘보물1호’인 노트북컴퓨터에 일기를 적었다. 그리고 ‘수난중일기(水亂中日記)’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어나 보니 정오였다. 누나들과 집에 가보니 물이 조금 빠져 있었다. 밤늦게까지 집안에 가득찬 진흙과 쓰레기를 퍼내고 있는데 순식간에 검은 물이 또 쏟아져 들어와 가슴까지 차올랐다. ‘둑이 무너졌다’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7일자)
주차관리원으로 있던 김군의 아버지(53)와 경리직 사원이던 큰누나(21)는 1월말 1주일 간격으로 정리해고된 터. 작은 누나(고3)까지 5식구는 지금껏 김군의 어머니(43)가 하는 작은 건어물상에 의존해 살아왔다.
“…대책본부에서 떡을 나눠준다고 해 얼떨결에 줄을 섰다. 50m쯤 되는 줄 안에서 떡을 먹는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내자신을 발견하고 갑자기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8일자)
“하늘은 정말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걸까. 이만하면 그칠만도 한데 비가 너무나 잔인하고 끈질기다. 내 전생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것같다.”(9일자)
김군은 10일자 일기 끄트머리에 “잠들 때마다 이 일이 꿈이길 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새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적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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