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환경을 비관해 자살하려던 사람이 심야에 PC통신에 올린 유서를 통신회사 직원이 읽고 경찰에 신고해 목숨을 건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11일 오전 2시4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13동의 한 주택에 세들어 사는 조모씨(24)가 방에서 수면제를 먹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발견,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다.
조씨는 이날 오전 1시경 PC통신 ‘넷츠고’게시판에 ‘스물다섯해를 정리하며’라는 제목의 유서를 띄웠다.
유서에서 조씨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삶을 정리하고 싶다. 두시간 후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야간근무를 하던 중 모니터요원으로부터 ‘이상한 유서가 올라왔다’는 말을 들은 SK텔레콤의 ‘넷츠고’운영팀 직원 강승범(姜承範)씨.
유서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고 판단한 강씨는 곧바로 사용자 정보조회를 통해 조씨의 주소를 알아낸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단독주택 옥상에 있는 조씨의 방을 간신히 찾아내 수면제 30알을 먹고 의식을 잃은 조씨를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서초구청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씨는 의식을 찾은 뒤 “부모가 이혼한데다 평소 불우한 환경을 비관해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처음에는 장난으로 올린 글로 생각했으나 유서를 읽어가면서 실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신고경위를 밝혔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신고를 받았을 때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PC통신의 유서가 한 생명을 구한 셈”이라며 달라진 세태를 실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