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설마…」는 이제 그만

  • 입력 1998년 8월 19일 19시 18분


경회루의 용마루가 벼락을 맞아 주저앉고 말았다. 용마루 붕괴의 원인이 2년전 쓰러진 채 방치된 작은 피뢰침 때문이었다고 관리자들이 말하고 있다. 피뢰침이 두개여서 하나만 괜찮으면 벼락이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뒤늦게 8억원을 들여 지붕 전체를 보수하기로 했다. 피뢰침 손질로 막을 수 있었던 사고에 생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그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중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의 불안요소로 떠오른 중국 양쯔(揚子)강 대홍수도 실은 댐건설과 관련한 공직자들의 부패와 부실공사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쯔강 홍수는 ‘가래’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그 피해가 커져버린 양상이다.

설마 설마하면서 ‘호미’로 막을 줄 모르기는 우리 보통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출입금지 표지를 무시한 채 계곡가에 텐트를 치고 밥을 지으며, 물이 가득찬 도로에 차를 몰고가다 목숨을 잃는다.

행정당국도 마찬가지다. 당장 성과가 나타나는 데만 예산을 투입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근본적 방재대책은 소홀히 한다.

이런 때일수록 비도 많고 지진도 잦은 일본 사람들의 재난관리 자세를 지켜볼 만하다. 최근 쏟아진 집중호우로부터 일본을 말짱히 지켜준 것은 ‘출선(出船)의 정신’이었다. 뱃머리를 미리 바다쪽으로 돌려놓으면 항구를 떠나기 편하듯 매사에 대비하고 사전에 점검하는 태세를 말한다.

올여름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앞으로는 ‘정례화’될 수 있으리라는 게 기상학자들의 전망이다. 민과 관 모두 사소한 구석이라도 비극의 소지를 사전에 섬세하게 관찰하고 고치는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할 때다.

이진영<사회부>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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