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自 타결이후…]명분-실리 모두 잃었다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36분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3개월간 소모전을 거듭해온 현대자동차 조업중단사태가 24일 정부 여당의 ‘타율중재’에 의해 일단 정상화의 길을 밟게는 되었다.그러나 재계 등에선 중재단이 일방적으로 사측에 압력을 가했고 합의안도 지나치게 노조의 요구에 기울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회사측이 이미 법제화된 정리해고를 시행하는데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것.그나마 정리해고 인원도 2백77명에 불과해 현대자동차의 이번 노사합의가 구조조정을 앞둔 대기업 노사관계에 악(惡)선례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

국민회의 중재단(단장 노무현·盧武鉉부총재)은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해온 노조가 기본입장을 바꾸도록 하는데 전력을 기울였고 결국 ‘상징적인 정리해고’에 머물렀다.

회사측은 지난달 말 1천5백38명을 정리해고자로 분류해 개별통보했으나 노사협상과정에서 6백15명으로, 국민회의 중재과정에서 4백60명으로 줄였고 마지막으로 ‘3백명 이상’을 제의했으나 이마저도 관철하지 못했다.

중재단이 “정리해고 규모와 방법은 나중 문제고 노조가 정리해고만 수용하도록 설득하면 된다”며 처음부터 노조에 매달리는 바람에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동원한 노조 농성의 불법성이나 폭력행위 등은 논의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이와 관련, 노부총재는 협상타결 직후 “하루아침에 노동계가 재계 마음대로 움직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노사가 합의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소송도 취하하는 게 관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대응은 처음부터 완강했다.현대자동차는 올들어 공장 가동률이 40% 이하로 떨어지자 4월23일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용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노조에 통보했다.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했고 법제화된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그러나 노조는 법제화된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물론 회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는데 대해서도 반발했다.

노조는 “회사측이 노조와 사전 상의없이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며 5월27일 1차 파업을 시작으로 7월16일까지 4차례나 파업을 벌였다.

회사측은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줄이기 위해 7월말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8천1백여명의 신청을 받아 희망퇴직으로 처리했다.

노조는 회사측에 맞서 지난달 16일부터 회사안에 천막을 치고 부녀자까지 동원, 농성에 돌입했으며 회사측은 최종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1천5백38명을 7월31일자로 정리해고했다.

이때부터 노조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노조는 “단 한명의 정리해고도 안된다”며 “회사측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협상안도 제시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또 지난해 받지 못한 성과급 등 인건비 2천6백여억원을 자진 삭감하겠다는 고통분담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8월17일 경찰병력 96개 중대 1만여명이 울산공장을 에워싸면서 노사는 벼랑으로 몰렸고 결국 국민회의 중재단의 중재로 ‘2백77명 정리해고’에 노사가 합의했으나 이 과정에서 회사측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울산〓정재락·이원홍기자〉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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