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선생님」과 「오리발」

  • 입력 1998년 9월 1일 19시 10분


J교사(35)는 떨고 있었다. 함께 불려온 다섯명의 교사와 강남 경찰서 입구에서 줄담배를 피워 댄 것이 벌써 네시간.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고액 족집게 과외사건으로 31일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은 J교사는 이날 오후 8시경 강남경찰서에 도착했다. ‘잠적한 주범 김영은(金榮殷·57)씨와 한두차례 밥을 먹은 것이 고작인데….’ 머릿속은 온통 후회로 가득했다.

앞서 불려간 선생님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다 불어버린 건 아닐까.’ J교사는 동료 교사들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끝까지 오리발이다. 나중에 증거가 나와 꼼짝 못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우겨야 산다.’

그러나 불이 훤히 켜진 경찰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첩에 이름이 있다던데, 추궁하면 어쩌나….’ ‘있는 사실마저 부인하면 경찰이 심하게 대한다던데…, 괜히 험한 꼴이나 당하는건 아닌지….’ ‘약속한 다른 선생님들을 믿을 수 있을까, 서로 떨어져 조사를 받는데 한 명이라도 불면 끝장인데….’ ‘우기다가 괘씸죄에 걸리느니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불었다가 나중에 나만 배신한 것이 드러나면 다른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

경찰서 앞마당을 배회하던 J교사는 공중전화 부스로 발길을 돌렸다. 조사받을 때의 ‘행동 요령’에 대해 지침을 내린 주임 선생님과 다시 한번 통화를 하고 싶었다.

전화 부스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기를 반복하던 J교사는 한참만에 수화기를 내려놓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으래요. 솔직히 털어놓은 선생님은 입건되고 힘들어도 우긴 선생님은 혐의없이 풀려났다나요….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제가…참 한심하죠….”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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