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조상 잃고 추석은 무슨…』

  • 입력 1998년 9월 6일 20시 54분


6일 경기 파주시 용미리와 고양시 벽제동의 서울시립묘지.

때마침 화창한 휴일을 맞아 1만여명이 넘는 성묘객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구슬땀을 흘리며 조상의 묘를 복구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초의 수해로 유실 또는 훼손된 묘는 시립묘지에만 4천90여기에 이르지만 이중 복구가 끝난 묘는 그중 30%인 1천3백여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 장묘사업소측은 당시 유실된 시신중 88기가 수습됐으며 이가운데 29기의 신원이 확인돼 유족들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일부 유족들은 서울시측에 유전자감식 등 정밀감식을 요구하고 있어 현재 서울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이 이 문제를 협의중이다.

사업소측은 수습된 시신에 대해서는 무료로 화장과 납골절차를 대행해주고 있지만 개인분묘의 원상복구는 유족들의 책임.

“주말마다 가족들을 동원해 조금씩 복구하고 있는데 추석까지 복구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조상의 묘를 복구하러온 정덕일(丁德一·54·서울 서초구 방배동)씨의 말.

‘배수시설 같은 것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일부 유족들의 요구에 대해 사업소측은 “이번달부터 현대건설과 삼성건설이 묘지보수공사에 나서 묘지내 도로복구작업과 사방공사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원확인이 곤란한 유골과 시신에 대해서는 피해유족들과 협의해 추석전까지 합동분묘를 조성하거나 위령탑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한다는게 사업소측의 입장.

“훼손된 묘지는 땀흘려 복구하면 되지만 유골이 유실되어 조상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추석을 맞아야 합니까.”

이날도 혹시나 하고 유골을 찾아 이 일대를 헤맨다는 한 유족의 힘없는 넋두리였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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