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올 2월 K대를 졸업한 이모씨(26).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호칭이 따라붙었다. 이른바 ‘취업 재수생’. 이씨에게 지난 1년은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구인 기업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운이 좋아 면접까지 볼 때도 있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인사담당자의 한마디였다. 신입사원은 모집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던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안풀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기계공학과는 선배들이 모두 원하는 곳에 쉽게 취업할 정도로 ‘잘 팔리던’ 학과였거든요.”
이씨는 작년말 공채인원을 대폭 줄인 대기업 두 곳의 입사시험에 실패하고 올초부터는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안 풀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충격으로 모두가 채용을 보류하고 그나마 경력자를 원했던 것.
그것도 잠깐. 3월이후 IMF한파가 경제 전반에 파급되면서 채용을 하겠다는 회사가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격감했다.
그래서 3월 이후에는 채용박람회에 가는 것을 제외하곤 집에 틀어박혀 어학 공부와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생활의 전부가 됐다.
“이럴 거면 뭐하러 비싼 등록금 내고 4년씩이나 공부를 했나, 전문대를 다녔더라면 기술이라도 하나 배웠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이씨의 한 가지 바람은 점점 커져만 간다. 취업희망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는 정책적인 지원을 해달라는 것.
“채용을 하는 회사가 있더라도 경력직만 뽑으니 어디 원서 내밀 데가 있어야죠. 월급은 제대로 못받아도 좋으니까 일만 시켜주면 좋겠어요.”
“정부가 실직자에게는 실업급여를 주고 재취업 훈련도 알선해 주지만 대졸미취업자에 대한 대책은 너무 없다”는 불만도 덧붙였다.
최근 들어 정부가 대졸 미취업자 대책을 조금씩 내놓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가끔씩 이력서 용지를 얻으러 학교를 찾는다는 이씨. 똑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면 “정부의 관심을 끌기위해 ‘데모’라도 한번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한다고. 지난달 29일. 이씨는 한국종합전시장(COEX)에서 열리는 채용박람회를 가기 위해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그러나 기계 공학 전공자를 모집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어 실망만 보탰다.“이렇게 가다 보면 앞으로 몇년간 추가로 쏟아져나올 취업 재수생 삼수생들은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말겠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람취급 못받는 것이 억울할 뿐입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