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는 요란했지만 학부모들은 자신들이 외치는 구호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다
9일 오후2시 ‘불법과외추방 학부모 자정결의 및 연수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청 구민회관. 8백여명의 강남지역 학부모가 이 행사에 참석했으나 표정은 왠지 무겁고 우울해보였다. 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강남지역 고액과외사기사건은 학부모들이 사건의 한 주체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불법과외 추방을 위한 학부모결의를 하자는 것이 이날 행사의 취지.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과외추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학부모를 대표한다는 한 인사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행동때문에 강남의 학부모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며 “교육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독선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불법고액과외근절에 앞장서자’는 결의문 낭독과 함께 20여분만에 이 행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연단 아래에서 오가고 있는 학부모들의 대화는 연단위의 비장한 결의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학교의 참석권유를 받고 나오긴 했지만 이런 형식적인 행사로 뿌리깊은 사교육 풍토가 바뀌어질까요.” 한 학부모의 회의적인 물음이었다. 대치동에서 온 학부모 백모씨(47)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나 토론은 없이 일방적으로 ‘내 자녀만을 위한 이기주의를 버려라’고 학부모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입시 풍토에서는 나자신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고액과외를 권유받으면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상 아래에 앉은 한 학부모의 실토였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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