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개선을 위해 뼈를 깎아야 할 처지인 조흥 상업 한일 외환 평화 강원 충북은행, 매각대상인 서울 제일은행 등 9개 은행의 대표와 노조측은 14일 오후 4시경부터 인원감축 등을 둘러싸고 밤을 새워가며 19시간반째 마라톤협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은행대표들은 전날, 밤이 깊었으니 추후 재협상할 것을 제안했으나 밤12시가 넘어도, 날이 훤히 밝아도, 출근시간이 돼도 노조원들이 회의장 출입문을 계속 봉쇄해 꼼짝할 수 없었다.
추원서(秋園曙)금융노련위원장이 자청한 기자회견 도중 기자들이 사실상 감금상태에서 진행되는 협상이 아니냐고 묻자 추위원장은 “감금이라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갑자기 은행대표측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감금이 아니면 도대체 뭐요.”평화은행장을 대신해 참석한 한기영(韓基榮)전무였다. 그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신복영(申復泳)서울은행장도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게 하는 게 무슨 자율이야. 화장실까지 따라와 나가나 안나가나 감시하는 게 자율인가”고 따졌다.
경찰은 이날 아침 은행연합회관 주변에 2개 중대를 배치하고도 투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장에서 협상이 어떻게 돼가는지 당사자들로부터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전무와 신행장의 말이 밖으로 전해진 뒤 경찰당국은 오전 11시30분경 경찰을 투입했다.
경찰은 강하게 저항하는 노조측 관계자 47명을 30분만에 중부경찰서로 연행하고 정오경 은행대표들을 은행으로 돌려보냈다.
협상은 결국 결론없이 중단됐다.
이들 노조원이 협상을 강요하고 나온 것은 최근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들 은행에 40∼50%의 인원감축을 요구한 데 따른 것.
노조측은 14일 오후부터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행장들에게 “13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한 인원감축에 관한 이행각서는 노조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즉각 회수해 오라”고, 나머지 7개 은행장에게는 “15일까지 제출키로 돼 있는 이행각서를 노조와의 합의를 거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은행 대표들은 “불가능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양측은 이 상태에서 전혀 협상에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밤을 새웠던 것.
경찰 투입 후 지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오던 한 은행장은 “이미 은행장의 권한을 벗어난 것을 요구하며 생떼를 쓰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은행이 정부의 출자를 받거나 조건부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금융감독당국의 인원감축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