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 잡아라』 대학 취업창구 문턱이 닳는다

  • 입력 1998년 9월 16일 19시 30분


서울의 D대 행정학과를 지난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취직 ‘맛’을 보지 못한 C씨(27)는 요즘 날마다 교수 연구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인사’를 올린다. 또 취업정보실에도 들러 담당자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가뭄에 콩 나듯’나오는 기업체 추천서를 따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올해같은 ‘취업대란’상황에서 그가 언제나 추천서를 손에 쥐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연세대 상경대의 경우 올 상반기에 학교로 접수된 기업체의 추천서는 다섯 건에 61장. 지난해에는 취업 희망자라면 누구나 추천서를 서너장씩 골라 쥐었지만 올해는 한 장을 놓고도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고려대에도 지난해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서 1백여장씩 배달됐던 추천서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들어온 추천서의 90% 이상이 중소기업들이다.

추천을 받는다고 해서 입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경쟁률이 대개 2∼3대1이어서 공개채용의 경우보다 다소 나을 뿐이다.

지방대나 서울의 군소대학은 그나마 ‘반반한’ 기업체 추천서 자체를 구경도 못하는 정도. 지난해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3백여장의 추천서가 날아왔던 충남대의 경우 올해는 보험회사 영업직과 중소기업 추천서만 30여장이 들어왔다. 경북대도 추천서가 예년의 10분의 1수준으로 줄었고 대기업 추천서는 한 장도 없다.

추천서 확보경쟁이 심해지면서 대학측도 나름대로 배분 원칙에 공평을 기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토플 6백점, 혹은 토익 9백점은 따놓은 학생이라야 추천서부탁을 할 수 있으며 화려한 입상 경력이나 자격증이 있으면 좀더 낫다.

또 일부 대학은 추천서를 내주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받아 점수를 매기거나 여대의 경우에는 외모 심사까지 한다. 때문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는 ‘과 수석이 아니면 추천서는 꿈도 꾸지 말라’ ‘토익 9백점짜리 백수건달’같은 자조섞인 농담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한양대 교학과 오용석(吳容錫·45)계장은 “예전에는 결혼 여부, 나이 등을 고려해 선배에게 추천서를 기꺼이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심각한 취직난은 선후배 관계까지 삭막하게 만드는 것같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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