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국세청을 통한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에 등장한 기업들은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겨냥해 납부액을 줄이면서도 권력의 칼날은 피하려고 발버둥친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세청 임채주(林采柱)전청장과 이석희(李碩熙)전차장은 1백여개 모금 대상 기업을 선정한 뒤 5대 그룹은 20억원, 나머지 기업은 매출규모와 경영상태에 따라 10억원 또는 5억원씩 대선자금을 뜯어내기로 기준을 설정했다.
SK그룹은 임청장이 20억원을 요구했으나 10월초 10억원만 냈다. 한나라당은 11월말 SK그룹에 대고 “돈이 적다”고 불평했다. SK그룹은 ‘마지못해’ 10억원을 더 갖다 바쳤다.
검찰은 “대우그룹도 2차례에 걸쳐 20억원을 줬으며 LG그룹은 국세청이 아닌 한나라당의 요청에 따라 20억원을 냈다”면서 “5대 그룹의 대선자금 공정가는 20억원”이라고 밝혔다.
OB맥주와 하이트맥주는 대선자금을 주는 대가로 세금징수를 유예받는 이득을 누리면서 요구액도 일부 깎고 버텨 ‘알뜰한 장사’를 했다. OB는 지난해 12월 주세 1천4백억원을 석달간 징수유예하는 조건으로 10억원을 할당받았다. 체납 가산금은 세액의 10%로 1백40억원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호조건이었다. 하지만 OB맥주는 “돈 없어 세금도 못내는데 액수가 너무 많다”고 버텼다.
그러자 임전청장은 요구액의 절반인 5억원만 내도록 수정제안했고 OB맥주는 수정제안액의 10%를 다시 깎아 4억5천원만 냈다. OB맥주는 납기일을 10일 넘긴 지난해 12월31일 세금을 냈다.
하이트맥주도 지난해 12월 주세 7백7억원을 징수유예받는 조건으로 5억원을 요구받고 난색을 표하다 14%를 깎아 4억3천만원을 냈다. 하이트맥주는 한달 뒤인 올해 1월 밀린 세금을 냈다.
임전청장의 요구로 대선자금을 낸 8개 기업 중 대우그룹 동양그룹 OB맥주 하이트맥주 등 4개 기업은 영수증을 받았다. 이들 기업은 한나라당 후원회에 돈을 내는 형식을 취해 1백만원짜리 쿠폰을 납부액에 해당하는 장수만큼 받아갔다.
특히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비자금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대우그룹은 김우중(金宇中)회장의 지시에 따라 돈을 낸 뒤 한나라당 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 쿠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여 ‘뒤탈’이 생기면 이런 영수증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으리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