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단풍빛깔은 예년보다는 칙칙한 편이랍니다” “다행히 큰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갔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돌아 일손을 멈추곤 하였다. 추석 단풍 우리나라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얼마나 정겹고 아름답게 들리는지!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로 매시간 뉴스를 들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복되게 여겨지는지!
▼축복받은 우리의 가을▼
연일 계속되는 늦땡볕 때문에 우리는 땀을 좀 흘렸지만 이 또한 풍작을 위해서는 더없이 좋았다니 힘들던 늦더위도 축복으로 여겨지는 9월이었다.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도 목청껏 노래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를, 우리의 가을을 사랑하며 하늘과 들녘을 바라본다. “우리 모두 고운 마음 물들일까요?”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으로 조용히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잠시라도 짬을 내어 교외로 나가 물맑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곱게 불타는 단풍숲이 못내 보고 싶어서 교통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산을 향한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놀이가 아니라 아름답게 불타는 모국의 단풍숲을 가슴에 새기고 와서 단풍처럼 밝고 고운 마음으로 일상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가을예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고 가을을 노래한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는 명시로 반세기 동안 우리의 가슴을 적셔온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서시(序詩)를 이 가을엔 매일 한번씩 기도처럼 외워보자. 아니 우리도 이와 비슷한 자기만의 맑은 서시를 써보자. 때로는 깊은 고민을 토로하며 나에게 보내오는 청소년 주부 수인들의 많은 편지를 대하면서도 나는 그들이 참으로 맑고 순결하고 선한 삶을 갈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난 잘못을 자책하다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식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아무도 몰래 죽고 싶다는 하소연을 들을 땐 마음이 아프다.
시인의 서시에서처럼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지향하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거짓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지 너도나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른 이의 부끄러운 부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에 대해 울 줄 아는 겸손을 배워야 하리라. 죄녀를 끌고와 돌로 치려는 이들에게 ‘당신들 가운데에서 죄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라고 일격을 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흠만 들추어내는 오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겠다. 자신이 먼저 뉘우치는 참회의 눈물속에 시들지 않는 희망과 평화를 꽃피워야겠다.
▼이웃과 나눌수록 행복▼
최악의 국난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겐 조금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계속 불평하고 남의 탓을 되풀이하는 사나운 눈길을 거두고 이제 서로를 격려하는 곱고 부드러운 눈길로 매일을 살자.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라는 말을 종종 기억하면서 성실하고 어진 마음을 되찾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오 나의 기쁨이여’라고 인사했다는 어느 성자의 말도 기억하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유순해지고 조금 더 사랑을 베풀자.
한가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한가위 달처럼 둥글고 고운 마음을 우리 모두 새롭게 하며 하늘을 보자. 고향을 비추는 둥근달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살고 싶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 더욱 나누어서 골고루 행복한 우리가 되고 싶다고 꼭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달을 보며 기도하자.
이해인<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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