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9시20분경. 북한당국이 동아일보 대표단을 위해 마련해준 76인승 특별기 TU134기로 원산항을 둘러싼 갈마반도의 비행장에 도착했다.
갈마반도 남쪽에 면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군사시설 지역이라 찾아가 볼 수 없었지만 송림(松林)을 배경으로 한 송도원 해수욕장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원산에서 동해안을 끼고 온정리에 이르는 1백8㎞의 왕복 2차로는 시멘트로 깨끗이 포장돼 있었다.
금강산 아래 첫 마을인 온정리에서 만물상 등산로 입구인 망상정까지의 14㎞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좁은 산길. 미니버스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 아래는 천길만길의 낭떠러지여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등산로 초입의 주차장은 미니버스 4, 5대밖에 주차할 수 없을 만큼 좁았다.
주차장에서 세명의 신선이 마주보는 자세로 서 있다는 삼선암까지 3백50m는 비교적 평탄한 노정. 등산로 바닥은 큰 돌을 고르게 깔아 놓아 걷기에 무리가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미 70년대 초반 정비해 놓았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다만 삼선암 바로 옆의 귀면암으로 오르는 길은 10여m의 좁은 철제 계단이 매우 가파른데다 귀면암을 바라볼 수 있는 바위도 3, 4명이 겨우 올라설 만큼 좁아 아슬아슬했다
주차장에서 현대관광단의 등산코스 종점인 절부암까지 1㎞의 산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위쪽으로 만물상이 점점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편으로 독수리 곰 자라 등 갖가지 짐승과 새 모양을 한 기암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다리품 파는 고단함이 절로 잊혀졌다.
절부암부터 천선대까지의 8백여m는 가파른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올라 가야 하는 험난한 산길이다. 도중의 일부 철제난간은 낡아서 흔들거리기도 했다.
샘물을 한모금 마시면 10년씩 젊어진다는 망장천(忘杖泉)에서 목을 축인 뒤 다시 가파른 철제 다리를 기어올라 한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천일문을 지나자 천선대. 올라 서자 한편으로는 석양에 물든 만물상이, 다른 편으로는 비로봉(1,639m)을 필두로 금강산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까마득한 절벽인 천선대 위도 바위틈새에 간신히 10여명이 들어설 정도의 좁은 공간. 그러나 북한측은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더 이상 개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온정리의 온천에 몸을 담갔다. 금강산 관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금강산호텔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온천은 시설은 낡았지만 대중탕 외에 2∼4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욕실이 여러개 마련돼 있었다. 피로회복에 즉효라는 무색투명한 라듐성분의 온천수는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아 꼭 알맞았다.
다음날 아침 삼일포로 향했다. 12㎞를 달려 도착한 전망대에서는 둘레만 6㎞에 이르는 호수와 한 가운데 바위섬에 세워진 사선정 와우섬 단서암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때마침 가을비까지 뿌려 여수(旅愁)를 자극한다. 멀리 오른편으로 동해에 떠있는 해금강이 가물가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철로는 없어진 채 교각만 덩그러니 남은 외금강선의 노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의 언덕만 넘으면 바로 휴전선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에 긴장감보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치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하는 안타까움이 저절로 들었다.
구룡폭포로 향하는 도중 들른 온정리에서는 관광객 수송 전용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태창(사장 이주영·李柱泳)의 샘물공장이 눈길을 끌었다.
4㎞ 떨어진 금강산속에서 뿜어 나오는 지하 용출수를 파이프로 끌어들인 샘물맛은 달게 느껴질 만큼 일품이었다.
현재 물탱크까지 들어서 정수 포장설비의 도입만 남겨 놓고 있는 이 샘물공장에서는 관광시즌이 본격화될 내년 3월부터 연간 11만t의 샘물을 생산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에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온정리에서 8㎞를 더 달려 도착한 구룡폭포 등산로는 끝물 단풍이 현란하게 시야를 덮었다.
안내원은 “윤달이 끼어 올해는 예년보다 단풍이 곱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기암괴석과 어울린 화려한 단풍에 넋이 홀린 듯 한 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사방을 둘러보느라 행보가 더뎌진다.
입구부터 탄성을 연발하는 일행을 “아직 대문에도 들어서기 전에 집이 좋다고 감탄하는 격”이라며 안내원이 재촉했다.
과연 금강산의 대문에 해당된다는 금강문을 지나니 옥류담 연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주렴폭포 등의 절승과 성벽바위 개구리바위 탱크바위 군함바위 봉황새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줄이어 나타나 눈길을 잡아 맸다. 특히 수심 6m의 옥류담은 바닥의 모래알까지 보일 정도로 맑았다.
산길은 만물상 코스에 비해 비교적 넓고 평탄한 편이었지만 로프로 연결된 도중의 흔들다리는 서너명만 함께 건너도 균형을 잃을 정도여서 조심스러웠다.
주차장에서 1시간 50분만에 도착한 구룡폭포의 물줄기는 82m. 장마철에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멀리 날아내려 1백20m로 길어진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폭포가 한눈에 건너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쉬는 대표단 일행은 만가지 상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절경탐승에 잠시 잊었던 분단의 아픔이 다시 뇌리를 자극한 탓일까.
〈금강산〓이동관·천광암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