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이지메」 첫 손해배상 판결…감독관청도 연대책임

  • 입력 1998년 10월 30일 19시 16분


학교에서 일어난 ‘집단 괴롭히기’에 대해 가해학생은 물론 학생의 부모와 감독관청도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22부(재판장 서희석·徐希錫 부장판사)는 30일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급우를 상대로 1년여간 벌어진 ‘한국판 이지메’사건과 관련해 집단 괴롭힘을 당한 장모군(19)과 그 가족이 서울시(교육청)및 가해학생과 학부모 1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서 피해가족에 대한 위자료 1천7백50만원을 포함해 1억5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의 청구액은 2억원.

이는 법원이 학생들의 괴롭히기 사건에 대해 감독관청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판례이며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학교폭력 및 집단 괴롭히기 따돌리기 등에 일대 경종이 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비슷한 경우로 괴롭힘을 당한 학생과 학부모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해학생들이 1년여에 걸쳐 장군에게 폭행을가한사실이모두인정되는 만큼 가해학생과 부모들은 장군과 가족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배상해야 한다”고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서울시는 학교감독기관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담임교사는 피해학생이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가해학생을 훈계하고 학부모의 다짐을 받은 것 이외에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폭행이 장기간 계속되도록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최모군(19) 등 5명은 95년 3월부터 같은반 친구인 장군을 ‘컴퍼스로 손등찍기’ ‘원산폭격’ ‘도시락에 침뱉기’ 등 50여가지 수법으로 1년여간 괴롭혀 온 혐의로 96년 2월 구속기소돼 소년원 송치 및 보호관찰처분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후 장군은 휴학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그해 8월 가해학생과 부모는 물론 학교와 교사, 감독관청도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 이지메 어떻게 했나

친구의 괴롭히기에 시달리다 못해 가슴 깊이 ‘피멍’이 든채 미국으로 떠난 장모군(19). 그가 겪은 고통의 나날은 너무도 처절했다. 소송기록에 나타난 ‘남의 일’만 같지 않은 그 진상.

95년 3월 서울 Y고에 입학한 장군이 같은반 친구인 최모군(19) 등 5명으로부터 집단 괴롭히기를 당한 발단은 심장판막증때문. 체육시간이나 교련시간에 심한 운동을 하면 좋지않다는 이유로 ‘열외’대우를 받자 급우들이 ‘멍청하다’‘재수없다’며 따돌리기 시작했다.

괴롭히기 수법은 무려 52가지. 주먹과 발로 얼굴 머리 가슴 다리 등을 때리고 찼다. 제도용 기구인 ‘컴퍼스’의 날카로운 부위로 양쪽 손등을 50여차례 찌르기도 했다.

폭행사실이 담임교사에게 알려지자 장군에게 “고자질하면 계속 손해보는 것은 너”라면서 화장실로 데려가 또다시 폭행했다. 장군이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밥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도시락에 침을 뱉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으로 희생된 뒤 ‘청소년폭력 예방재단’을 결성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종기(金宗基·52)이사장은 “이 판결은 폭력행사가 영웅시되는 일부 학생들의 그릇된 의식, 폭력학생 부모들의 잘못된 과잉보호, 학교측의 지도의무태만 등에 대해 단죄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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