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먼저 고인이 된 소설가 선우휘(鮮于輝)씨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북녘 땅에서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지냈다. 월남하고 나서 거친 세파 속에서 정치적인 생각을 달리한 적도 있었으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이를 더해가면서는 더욱 서로가 이해하려고 했고 의지하려고 했다.
그는 내가 다분히 객기어린 글로 군사정권을 비판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총칼로 정권을 뺏은 사람들이 그대로 물러갈 줄 아는가.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 많아. 흘러가는 세월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 「銃風」에 소외된 국민 ▼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별로 대꾸할 말이 없어서, 그런 때면 으레 김수영(金洙暎)의 시구를 생각하곤 했다. 그 무렵은 그의 시가 애송되던 때였으니까.
‘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이십(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중에서).
그래서 김수영은 자신을 모래알처럼, 바람이나 먼지나 풀잎처럼 작고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 당시의 거대한 정치권력 앞에서 자조(自嘲)한 것이라고 해서 그후 민주화운동이 고조됐을 시기에는 그것을 무기력한 소시민의 넋두리라고도 해석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 이 시골길 저 푸르디 푸른 한반도의 가을 하늘 아래서 왜 그런지 김수영의 시가 마음에 떠오르고 되살아난다. 그래서 시는 영원하다는 것인가.
김수영이 야경꾼만 증오하면서 옹졸하게도 ‘한번 정정당당하게’ 저항할 수 없었던 그런 권력은 이제 없다. 군홧발로 짓밟는 폭력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김수영의 시를 읊조리면서 나의 옹졸함을, 그때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쩌다가 나라가 이 모양이 됐는가’라고 묻는 물음이 도처에 범람하고 있다. IMF관리체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 탄압이 없는데도 왜 저 국회는 이 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끝없이 터져나오는 부패는 어떻게 된 것인가.
밥은 먹게 되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인간성은 어느덧 땅에 떨어진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막강한 권력이 우리를 누르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력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김수영이 한숨지은 것처럼 우리는 옹졸하고 모래알이나 먼지나 풀잎처럼 무기력하기만 하다. 총칼로 정권을 뺏은 사람들은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이 땅에 진실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검찰은 이른바 ‘총풍’사건에 대한 수사발표를 했다. 이에 앞서 안기부는 87년 대선 직전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나 92년 대선 때의 이선실(李善實)간첩사건, 96년 4·11총선때의 북한군 출몰사건 등 ‘선거 때마다 있었던 북한의 불순 책동’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그러한 사건들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라는 확증이 있었던 사건’이고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태도’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엄청난 사건들을 가리는데 국민은 소외되고 무력함을 되씹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 역사적 사실 규명돼야 ▼
미국의 유태계 여류 정치철학자 하나 아렌트는 미국에서도 역사적 사실이 정치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질 때 오리무중 은폐돼 온 것을 지적했다. 케네디 형제의 암살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도 모두 종국에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은 없고 기자들의 ‘의견’만이 무성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불신과 무력감으로 몰아넣고 만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치나 정쟁의 도가니에 빠뜨려서는 안된다. 제삼자들의 진실규명 노력 또는 제삼자적인 눈이 필요하다. 사건에 대해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규명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스스로 옹졸하다고 자조하던 김수영의 시구를 몇번이고 되새기면서 저 가을하늘처럼 정치가 청명해지는 날은 아무래도 오지 않는가 하고 나는 한숨짓는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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