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호갑/화장실서 옷 갈아 입다니…

  • 입력 1998년 11월 9일 19시 28분


“24인치는 좀 작은 것 같은데…. 맞을지 모르겠네요.”

“저기 왼쪽으로 돌아가면 화장실에 있으니 거기서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

7일 오후 겨울용 바지와 스웨터를 사기 위해 서울 중구 을지로6가 K상가를 찾은 회사원 김태은(金兌恩·27·여)씨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탈의실을 물어봤는데 웬 화장실? 화장실 옆에 탈의실이 있다는 말인가.’

탈의실을 찾지 못해 혹시나 하고 화장실로 들어간 그는 놀라고 말았다. 10여명의 여성들이 바지 치마 등을 들고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남이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값이 싸고 다양한 종류의 옷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는 김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의류매장에 탈의실 하나 없다는 것에도 화가 났지만 화장실 청결 상태는 더 엉망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상가측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매상들을 상대로 도매를 주로 하기 때문에 탈의실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매는 옷을 입어보고 사는 경우가 없다는 것.

상인연합회 김시율(金時栗)회장은 “1개 층에 입주해 있는 2백여 상인들이 5천5백만원 상당인 기존매장 하나를 구입하면 공동 탈의실을 설치할 수 있으나 합의가 쉽지않다”고 말했다.

96년9월 오픈한 K상가에는 하루에도 적게는 5천명에서 많게는 1만여명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지하 1층과 지상 1,2,3층에 영업중인 상점만 8백여개. 층마다 남녀 화장실은 있지만 탈의실은 없다. 김씨는 “좋은 옷을 값싸게 파는 것도 좋지만 소매도 겸하는 의류매장에서 탈의실조차 설치하지 않은 것은 고객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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