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부형권/『아들대신 에미가 공부를…』

  • 입력 1998년 11월 19일 19시 05분


“하늘나라의 경대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올해 안되면 1년 더 공부해서라도 경대가 다녔던 명지대에 꼭 들어가고 싶어요.”

이덕순(李德順·51)씨. 91년 4월 학내시위 도중 전경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강경대(姜慶大·당시 19세·명지대 경제1)군의 어머니.

고졸 학력인 이씨는 1년여 동안 입시학원을 다니며 수능시험을 준비했고 18일 서울 신일고에서 시험을 치렀다.

“나이 50을 넘겨 시작한 공부여서 힘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경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죠. ‘아들이 다 못다닌 대학을 엄마라도 대신 다닐 수 있다면…’하고요.”

이씨와 남편 강민조(姜珉祚·57)씨는 93년 아들의 시신이 안장된 광주 망월동 묘소 근처로 이사를 했다. 아들 곁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다. 그곳에 아들과 남편 이름의 가운데 자(字)를 딴 ‘경민회관’이란 식당을 열었다. 식당에선 음식도 팔았지만 경로잔치 등을 열어 이웃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1년여간 수능준비를 위해 식당일을 친척에게 맡기고 서울에서 지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한달에 몇 번은 꼭 경대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말하며 힘을 냈죠. ‘너도 이런 어려운 공부를 했었구나’.”

온세상이나 다름없던 아들을 잃은 뒤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이씨.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수험생은 바로 이씨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공부부터 시작했는데 자꾸만 잊어버려요. 그래서 올해 성적은 기대를 안해요. 경대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아요.”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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