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경기 부천시청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 K씨의 부인 L씨는 27일 남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빨리 주소지 옮기는 데 필요한 서류를 알아봐. 30일까지 주소지를 옮겨야 하니까.”
“갑자기 주소지를 왜 옮겨요.”
“시에서 옮기라고 했단 말이야. 요즘 분위기도 안 좋은데 시키는대로 해야지.”
영문도 모른 채 관련 서류를 준비하던 L씨가 남편에게 듣게된 이유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자동차세금 때문이래. 자동차세는 지방세라 시에서 직접 걷어 쓸 수 있거든. 우리가 주소지를 옮겨야 부천시가 조금이라도 세금을 더 걷게 된다는 거지.”
“하지만 살지도 않는 곳에 주소지를 옮겨놓는 건 불법이잖아요.”
“불법이지. 하지만 별수있어. 시키는대로 해야지.”
부천시가 자동차세 부과기준일인 12월1일 0시 이전에 부천에 살지 않는 공무원들에게 주거지를 부천으로 옮기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은 27일. 하지만 불법을 강요한 시 관계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반응.
시의 한 관계자는 “부과기준일 전에 잠깐만 옮겼다가 다시 원주소지로 가도 괜찮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담당과장도 “불법이긴 하지만 큰 잘못도 아니고, 시 재정도 어려운데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남편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급한대로 친척집으로 옮기긴 옮겼는데….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관청이 재정이 어렵다고 공무원에게 위법행위를 강요하다니 답답하네요.”
L씨는 씁쓸한 듯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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