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 현장
종권(宗權)에 눈이 먼 ‘권승(權僧)’들은 불자(佛子)를 비롯한 온 국민의 기대를 끝내 저버렸다. 그들에게 폭력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와 같은 것인가. 30일 오후 조계사 경내는 ‘전장(戰場)’을 방불케 했다. 총무원 건물을 놓고 발생했던 그 어느 폭력사태보다도 더 격렬하고 유혈이 낭자한 추태를 빚었다.
지난달 11일부터 총무원 건물을 점거중인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은 건물 탈환을 시도하는 전국승려대회측 승려들을 향해 건물 난간위에서 대형생수통과 유리병 유리조각 등 흉기가 될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던졌다. 특히 이들은 유리병을 일반 시민과 경찰 보도진들이 있는 뒤쪽으로도 무차별적으로 던졌다. 대학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화염병마저 투척, 지켜보는 이들이 더 이상 할말을 잃게 했다.
이에맞선 승려대회측 승려들도 미리 준비한 노란 헬멧에 우의, 그리고 손잡이 달린 목제 방패를 쳐든 채 총무원 건물로 돌진과 후퇴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깨진 한 승려는 피를 흘리며 ‘×할 ×들’이라는 등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헤대며 조계사 경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추태도 보였다.
양측에서 동원한 ‘일반인 부대’들도 보통의 불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조계사 경내 곳곳에서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물리적 폭력 뿐만이 아니었다. 양측은 초대형 스피커와 서치라이트까지 동원, 정치유세장을 방불케하는 선전전을 벌렸다. 그 가운데는 도저히 스님들의 말로는 믿어지지 않는 섬뜩섬뜩한 공방도 있었다.
“우리는 분신자살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총무원을 사수할 것이다”
“송월주 잔당 스님들아. 불상사가 발생해도 우리는 책임질수 없으니 빨리 물러가라”
“스님 옷을 훔쳐 입고 그속에는 짐승보다 못한 몸을 숨기고 있는 가짜 승려들”등. 선전전치고도 유치한 공방이 1일 새벽까지 계속돼 이 일대가 밤늦도록 소음공해에 시달렸다.
이날 조계사주변에는 민생치안에 나서야 할 경찰병력 5천여명이 뜬 눈으로 밤을 세우며 국고를 낭비했다.
▼ 폭력사태의 책임
조계종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책임은 월하(月下)종정에게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정화회의와 승려대회준비위측은 29일 새벽 △양측이 동수로 참여하는 임시집행부 구성 △승려대회 취소 △총무원에서 정화회의 철수 등을 골자로 하는 극적인 타협안을 마련, 서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종정은 “(자신이 교시를 내려 열렸던) 11일 승려대회의 결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수 없다”며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이미 대세를 쥐고 있으므로 전부를 얻겠다는 독선적 발상의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일부에서는 월하종정이 이번 사태 초기부터 지나치게 당파적 입장을 취했다고 비난한다.
종단의 안정 보다는 종정권한 강화, 치탈도첩자(승려자격 박탈 징계)의 사면복권 등 종정주변의 요구사항 관철에 더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 결의가 나오고 “권력에 눈이 먼 월하스님”이라는 불교계의 위계질서로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참담한 표현까지 등장한데는 종정 자신의 책임도 크다는 의견들이다.
정화회의측도 이젠 더이상 총무원 건물을 점거하고 있을 명분이 없다. 이들의 총무원 점거의 최대 명분이었던 송원장 3선 저지는 이미 지난달 19일 송원장의 사퇴로 이뤄졌다.
중앙종회를 비롯한 이른바 ‘종헌종법 수호파’도 종권이라는 ‘잿밥’에 집착하는 모습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이들은 승려대회후 대규모 폭력사태가 불보듯 뻔한 총무원 탈환에 나서 ‘폭력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렸다.
▼ 대책은 없는가
30일 조계사 폭력사태로 ‘정화회의’측이나 ‘종헌 종법수호파’는 대화로 문제를 풀수 있는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당분간 사태수습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더이상의 폭력사태를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대다수 불자들의 요구다.
일반 불자들은 △일정 시한이후 경찰력을 동원, 조계사경내의 양측 승려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양측이 합의한 이후 조계사를 돌려주는 방안의 적극 검토 △총무원중심운영체제를 24개 본사중심체제로 전환 △총무원장의 임기 4년을 1∼2년으로 단축하고 중임제를 단임제로 바꿔 총무원장 자리싸움을 영원히 종식시킬 것 △사찰재정 투명화방안 마련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