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사유의 두가지 큰 줄기가 시비 선악을 가리는 분별의 원칙과 그 분별마저 떠나는 초탈의 원칙이라면 불교는 초탈을 통해 인간을 좀더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물신주의와 인간성의 황폐화로 중생들이 방황하는 시대에 불자들은 중생들의 공허한 내면세계를 채워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격조 높은 가르침, 촌철살인의 잠언, 미래의 비전을 법어로 들려주는 큰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혼돈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참된 진리의 빛을 원하고 있다. 불교인들이 방향을 제시했는데도 대중이 들을 귀가 없다면 그 책임은 대중의 몫이다. 그러나 국민이 충분히 깨우칠 수 있는 총명과 영각(靈覺)을 지녔는데도 교훈이 없고 세기말적 작태만 보인다면 그것은 불교지도자들의 책임이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이때 불교계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국가를 선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김기삼(조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