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보여주듯 살벌한 남북 대치의 현장인 공동경비구역. 근무수칙상 북한병사와 마주치더라도 이쪽 신분조차 밝힐수 없다. 더욱이 북측지역까지 오가는 일은 범죄에 해당하는 금기.
그러나 이번에 북한군과 접촉하면서 선물을 주고받아왔고 심지어는 부대통솔과 군기를 책임져야 할 부소대장이 군사분계선을 건너가 북한군과 수시로 만나 술을 마시고 왔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역병들에 따르면 김영훈 중사(28)는 북한군과 ‘친구사이’로 통할만큼 가까웠다. 근무중인 우리측 병사에게 북한군이 다가와 “나는 김중사 친구인데 오늘밤 10시에 1초소앞 군사분계선에서 보자고 전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는 것.
또 김중사는 북한군을 만날 때는 항상 술을 마셨고 어떤 날은 안주로 쓰기 위해 고기를 구워가지고 갈 정도였다.
김중사는 북한군과 만나러 갈때는 사병들에게 “공동경비구역 감시카메라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한 뒤 북측 초소로 몰래 건너가곤 했다는 것이 전역병들의 증언.
김중사는 북한군을 만난 뒤 주로 인삼주 담배 계란과자 북한보약 달력 등을 한번에 서너개씩 가지고 왔다. 그는 또 흑맥주나 독일제 위장약도 가져왔다. 그는 북한 유류품을 구하면 포상휴가를 받는 규칙을 이용, 인삼주 담배 위장약 등 북한군으로부터 넘겨받은 물건으로 사병의 환심을 샀다는 얘기다.
특히 병장들은 김중사가 준 북한제품으로 순번을 정해 휴가를 갔다는 진술도 나오고 있다.
일부 사병들도 북한측 병사들과 수시로 만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중사가 속해있던 2소대 사병들은 내무반 검열에서 김일성 배지와 북측이 보낸 편지 등이 발견돼 소대원 3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사병들이 “북한 병사와 접촉, 습득했다”고 경위서를 제출하자 중대장이 깜짝 놀라 사건의 파장을 축소한 채 문제의 사병들을 ‘지시 불이행’죄목으로 보름씩 영창을 보내는 선에서 마무리한 적도 있다는 것.
북측병사와 접촉한 경험이 있던 사병들은 이 사실 자체가 약점으로 잡혀 북한병사로부터 협박까지 받았다.
한 전역병은 “호기심에 북한 병사를 몇 번만나 선물을 교환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아 접촉을 피하자 북한군인이 ‘접촉을 피하면 같이 만난 사실을 다른 한국군에 알리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91년 이 부대를 전역한 정모씨(33·회사원)는 “3년내내 서로 얼굴을 맞대야 하는 부대특성상 한국군이 북한병사와 담배를 교환하거나 서로 아는 체 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서로 술을 마시고 신분을 밝히는 등의 행동은 상상할 수 없었다”며 “94년부터 한국군 단독으로 공동경비구역을 담당하면서 근무수칙도 군기도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