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권재현/『버스타기 너무 힘들어요』

  • 입력 1998년 12월 14일 19시 15분


버스를 벌써 세대나 놓쳤다. 이번엔 정류장 바로 앞을 지나쳐 10여m 앞에 섰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다시 지팡이를 잽싸게 놀려 버스를 향해 쫓아갔다. “스톱, 스토옵.”

허천식(許千植·47·서울 성북구 정릉동)씨는 왼손을 연방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지만 버스는 승객 몇명을 내려놓고는 출발하려는 참이었다.

‘이번엔 안돼, 벌써 1시간이나 기다렸단 말이야.’

급한 맘에 오른손에 쥐고있던 지팡이로 버스 차체를 두들긴다는 것이 차창을 건드리고 말았다.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버스는 그제서야 멈춰섰다.

13일 저녁 9시반경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로터리 154번 좌석버스 정류장에서였다.

하지만 허씨는 그 버스에 실려 두 딸과 아내가 기다리는 집이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동대문경찰서에서 폭력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유리창을 깨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불끈 힘이 들어간 건 사실입니다.”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하는 허씨는 월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신장염을 앓아오다 94년 고관절수술로 양무릎과 엉덩이 양쪽에 인공관절을 끼워넣은 5급장애인. “대부분의 버스들이 정류장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서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뒤쫓아가 제때에 타기도 어렵지만 버스를 타더라도 버스비 내는 동안 급발진하기 일쑤죠.”

그로선 버스타기가 항상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을 수밖에 없다. “제발 한번만 주변을 둘러봐주세요. 누군가 힘겹게 손을 흔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버스운전사들을 향한 허씨의 하소연이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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