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자 엘리트들 몸값 폭락『취직도 힘들다』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9시 37분


‘아 옛날이여!’

박사와 변호사 공인회계사 의사 등 이른바 우리사회의 ‘사(士)’자 엘리트들이 험한 세상을 만났다.

대기업 과장직에 몰리는 사법연수원생들, 수십만원의 월급도 마다않는 공인회계사 합격자에다 아르바이트에 나선 미취업의사들. 각고의 노력과 치열한 경쟁 끝에 자격증을 따냈건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삼성그룹은 최근 이례적으로 내년초 수료를 앞둔 28기 사법연수원생 중 신입사원을 선발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연수원수료생이 곧바로 대기업에 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

그런데도 24명이나 지원해 모집정원 6명을 3배나 넘었다. 삼성측은 이들의 급여에 대해 ‘절충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대형로펌 초봉의 60% 수준인 월 3백만원선에서 결정될 것이란 얘기.

1명의 연수원수료생을 뽑을 예정인 대아건설도 대우를 과장직 정도로 생각중이라고. 대아건설의 한 관계자는 “연수원 수료예정자뿐만 아니라 개업변호사들로부터도 문의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인회계사도 예전같지 않다. 합격자가 지난해보다 50명 늘어난 5백명이 된데다 주요 회계법인들이 대부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신규채용 인원을 줄인 탓.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이 군소회계법인이나 개인사무실 등으로 몰리면서 일부는 “월급은 1백만원이 안돼도 좋다”며 채용을 사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

유학파박사도 과장 이하로 시세가 급락. 국내 4대 민간경제연구기관 중 하나인 L경제연구원에서는 올해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딴 연구원을 책임연구원(과장급)으로 채용했다. 몇년 전만 해도 해외유학파 박사는 연구위원(부장급)으로 뽑았으나 이제는 특출한 연구경력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이런 처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 대기업에서는 박사학위소지자에게 대리나 과장초임을 주는 실정. 그나마 취업이 됐을 때 얘기다. 올해는 신규채용이 거의 없어 학위에 따른 대우를 받지 않고라도 취업하겠다는 박사들이 많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보통신 주문형반도체 등을 제외하고는 이공계 박사도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설명.

의료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올해 전문의 신규면허자의 취업률이 30%대에 머물면서 친분이 있는 선배의사의 병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아르바이트는 주로 야간당직을 서거나 진료를 거들어주는 것.

예전에는 전문의시험에서 떨어지면 시험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가 많았으나 이제는 합격해도 취업이 어렵다. 내로라하는 명문대의대를 졸업하고도 병원에 자리가 어려워 보건소로 간 경우도 있다.

이런 변화는 중매문화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의사 변호사 등이 남이 서주는 중매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서 배우자를 찾는 것.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경우 지난해 ‘사’자 직업을 가진 회원이 2백여명이었으나 올해는 4백여명으로 증가. 또다른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경우도 이들 직업군의 가입자가 매달 10% 이상 늘어나는 추세라고. 듀오의 한 관계자는 “잘나가는 전문직들이 요즘처럼 직접 배우자를 찾아나서는 것은 수년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