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80년대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관절꺾기’ ‘전기고문’ ‘물고문’ 등 다양한 고문기술을 선보이며 ‘저승사자’로 군림했던 이근안(李根安·60)전경감.
김근태 민청련 의장(현 국민회의 의원)을 불법체포, 고문한 혐의로 88년 12월24일 지명 수배된 그는 10년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고 있다. 서울지검 강력부와 이씨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경기지방경찰청이 합동으로 구성한 특별수사팀은 10년간 고작 10여건의 허위 제보를 쫓았을 뿐 정권이 두번 바뀌고 강산이 변하도록 이씨 행방에 대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안잡는 것인가, 못잡는 것인가.
현재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을 반장으로 경기청과 그의 연고지인 분당 고양 안산 파주 등 4개 경찰서 소속 형사 30명이 이씨를 쫓고 있다.
그러나 말이 전담반이지 이씨에 대한 추적이 중단된 것은 이미 오래전. 경기청 담당 간부는 수사 상황을 묻는 질문에 “연고선을 중심으로 형사 4,5명씩을 지정해 놓았지만 일상 업무도 많고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라고 털어놨다. 검찰 역시 실제 움직임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씨에 대한 공소시효는 올 10월 서울고법 형사2부가 납북어부 김성학(金聲鶴)씨 등이 낸 재정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2013년까지 연장됐다. 김씨 등 3명은 87년 이씨 등 당시 경기도경 소속 경관 16명의 고문때문에 간첩으로 몰렸다며 재정신청을 냈었다.
따라서 이씨는 75세가 되는 2013년까지 잡히기만 하면 언제든 법정에 서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이씨의 행방에 대한 설(說)은 분분하다. 자살설 제거설 해외밀항설 성형수술설 비호은둔설 등이 떠돌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대도시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
10년간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경제력 있는 누군가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서울 동대문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의 부인(58)은 “94년의 큰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동안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수배 2년만인 90년 이씨를 봤다는 이씨의 경찰 동기생은 “1백㎏이 넘던 이씨가 70㎏ 안팎으로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간첩검거를 위해 1년간 엿장수로 변장하고 다녔을 만큼 변신술에 능한 그를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6일 이씨 등 전현직 경찰관 8명에 대한 공소유지 변호사로 선임된 백오현(白五鉉·47)변호사는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이씨를 찾아내 법정에 세우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 훈·권재현기자〉dreamlna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