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선물꾸러미를 든 채 백화점을 나서는 시민들 사이에서 ‘불우이웃돕기’라고 쓰인 모금함을 든 20대청년이 40대중반의 한 여성에게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노숙자와 재소자를 돕기 위해 성금을 모금하는 대학생입니다. 따뜻한 온정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중년여성의 짜증섞인 답변. “바빠죽겠는데 왜 이래 정말….”
머쓱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30대의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힘든 IMF겨울을 보내는 이웃에게 작은 정성을 모아주세요.”
그러나 남자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크게 내저으며 버스에 올라탈 뿐이었다.
대학생 선교연합회(UBF)회원인 하재홍(河在鴻·24·고려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씨는 올해로 4년째 연말마다 거리모금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하씨의 마음은 여느해보다도 무겁고 어둡다.
“1백여명의 시민들에게 모금함을 내밀었지만 대부분 외면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저녁끼니도 거른 채 2시간 가까이 찬바람을 맞으며 모금운동을 했지만 모금함에는 천원짜리 4장이 고작이었다. “세밑 찬바람만큼이나 매서운 경제난 속에 사람들의 마음조차 얼어붙은 걸까요.”
품에 안은 모금함을 어루만지던 하씨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백화점 외벽에 설치된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을 바라보며 하씨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힘든 때일수록 이웃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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